『성의 정신병리』로 동성애를 타고난 신경병으로 분류한 독일의 정신의학자
1886년 그라츠에서 『성의 정신병리』를 펴내 사디즘·마조히즘 같은 말을 퍼뜨리고, 동성애를 처벌이 아닌 치료의 대상으로 옮겨 놓았다.
그라츠와 빈의 정신의학 교수. 1886년 『성의 정신병리』에서 동성애를 타고난 유전적 신경병으로 정의하고, 동성애자는 제 기질에 책임이 없으니 처벌이 아니라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19세기 성병리학의 표준 교과서가 되어 동성애를 법정에서 진료실로 옮겨 놓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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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1902
과학·기술
관련 역사 사건
『성의 정신병리』와 「도착」의 분류
바덴 대공국 만하임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1872년 슈트라스부르크, 1873년 그라츠, 1889년 빈의 정신의학 교수가 되었다. 정신의학과 형법의 관계를 연구했으며, 1886년 『성의 정신병리』(Psychopathia sexualis)를 펴냈다. 판을 거듭하며 늘어난 이 책은 19세기 성병리학의 표준 교과서가 되었고, 마지막 판은 238개의 사례사를 담았다. 법률가 카를 하인리히 울리히스의 저술을 읽고 동성애 연구에 들어선 그는 동성애를 타고난 신경병적 장애, 곧 유전적인 신경병으로 정의했다. 그래서 동성애자는 제 「기형」에 책임이 없으니 판사가 아니라 신경과·정신과 의사의 손에 맡겨야 한다며 처벌 폐지를 주장했지만, 이는 동성애를 치료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생식을 성욕의 목적으로 보아 생식과 무관한 성을 도착이라 했으나, 1901년 《성적 중간 단계 연감》의 글에서는 「이상」이라는 말을 「분화」로 바꾸었다. 1902년 그라츠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