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더릭 맥파쿼

Roderick MacFarquhar
영국 노동당 사회민주주의 영국 영국 1930.12.2.–2019.2.10. ○ 자연사

『문화대혁명의 기원』 3부작과 『마오의 마지막 혁명』으로 엘리트 정치를 해부한 하버드의 중국학자

1961년까지 런던에서 중국 관련 보도를 담당한 언론인이었고 중국 본토는 1972년에야 처음 방문했으며, 이후 인민공화국 건국부터 문화대혁명까지의 중국 엘리트 정치를 연구했다.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언론인과 노동당 하원의원을 거쳐 학자가 되었고 『차이나 쿼털리』를 창간해 편집했다. 1974년부터 1997년까지 낸 『문화대혁명의 기원』 3부작은 1956년 백화제방부터 1966년까지 최고 지도부 안의 노선 대립을 추적해 문화대혁명이 마오 개인의 변덕이 아니라 대약진 운동 실패 이후 누적된 정치적 갈등의 귀결임을 보였다. 2006년 마이클 쇤할스와 쓴 『마오의 마지막 혁명』은 1966~1976년 전체를 다룬 표준적 서술이다. 하버드대학 교수와 페어뱅크센터 소장을 지냈다.

다른 이름: 로더릭 맥파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차이나 쿼털리』 창간과 편집 (1959~1968)

1959년 초, 28세의 맥파쿼는 『소비에트 서베이』 편집인 월터 라크외르의 초청으로 『차이나 쿼털리』를 창간하게 되었다. 라크외르는 『소비에트 서베이』의 백화제방 특집호에 맥파쿼가 기고한 글을 읽고, 중국만을 다루는 별도 학술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그에게 창간 편집을 맡겼다. 창간 준비 과정에서 맥파쿼는 유럽과 미국의 주요 중국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학계의 사정을 익히고 원고를 모았다. 그러나 당시 1949년 이후의 중국을 진지하게 연구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고, 학술지에 실을 만한 연구 논문을 쓰는 사람은 더욱 드물었다.

1960년에 나온 창간호에서 그는 이 공백을 정보원으로 메웠다. 인민공화국 성립 후 첫 10년을 개관하는 짧은 글들을 전·현직 정부 관료들에게 맡겼고, 첫 글은 1947~50년 베이징에 근무한 미국 외교관 하워드 부어만이 썼다. 맥파쿼는 사설에서 부어만의 평가를 받아들여 “중국의 힘은 현재 사실이며, 그것만으로도 이 학술지를 창간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라고 밝혔다. 이 잡지는 창간 목적에 맞게 매호 ‘계간 연표와 자료(Quarterly Chronicle and Documentation)’를 실어 최근의 정치 사건을 요약했다.

1959~1968년에 그는 모두 33호를 편집했다. 후임 편집인 데이비드 C. 윌슨은 그 기간 동안 『차이나 쿼털리』가 “현대 중국의 발전과 중국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서방의 대표 학술지”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창간 과정에서 쌓은 학계와의 인맥은 1968년 편집에서 물러난 뒤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갈 때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