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히스문도 카사도

Segismundo Casado
스페인 공화파 스페인 스페인 1893–1968 ○ 자연사

네그린을 무너뜨리고 프랑코와 평화 협상을 시도했으나 무조건 항복만을 받아낸 공화국 장군

1939년 3월 5일 밤, 라디오 마이크 앞에 선 카사도는 네그린 정부가 공산당 독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국방평의회의 수립을 선포했고, 마드리드에서는 곧바로 시가전이 시작됐다.

스페인 공화국군의 기병 장교로, 내전 발발 후 공화국 진영에 남아 인민군의 작전·훈련을 맡으며 중부군 사령관까지 올랐다. 전쟁이 이미 졌다고 확신한 그는 1939년 3월 5일 마드리드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네그린 정부를 전복하고 미아하 장군을 내세운 국방평의회를 세웠으며, 공산당의 정권 장악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프랑코와의 평화 협상을 시도했다. 프랑코는 무조건 항복만을 요구했고, 카사도는 영국 군함으로 탈출해 영국과 베네수엘라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1961년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39년 쿠데타와 최후의 협상

1938년 카사도는 네그린 정부가 저항을 계속하는 전략에 의문을 품었고, 전쟁은 이미 패했으며 더 버티면 불필요한 희생과 파괴만 늘어난다고 판단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의 이해를 위해 전쟁을 연장한다고 비난했다. 1939년 초 민족주의 진영과 비밀 평화 접촉을 시작했고, 군 지휘부 일부와 사회주의자·아나키스트들의 지지를 얻었다. 3월 5일 반네그린 세력은 국방평의회 수립을 선언하며 공산주의 독재 장악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내세웠다. 카사도는 방위담당 위원으로 활동했고, 평의회에 충성하는 세력과 공산당계 부대의 전투는 3월 11일까지 마드리드에서 이어졌다. 평의회 통치 아래 공산당 지도자 일부가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

카사도와 평의회는 민족주의 진영과 협상을 계속했다. 카사도는 단계적 항복, 탈출 희망자들의 대피, 전후 정치적 탄압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원했으나, 프랑코 측은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했다. 협상은 성과 없이 끝났고, 3월 26일 평의회는 저항 중단을 명령했다. 카사도는 3월 29일 간디아에서 영국 군함에 올라 스페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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