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세르게예비치 프로코피예프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Прокофьев
소련 러시아 1891–1953 ○ 뇌출혈

혁명과 이민과 귀환을 가로지른, 20세기 소비에트 음악의 거장

「작곡가는 시인·조각가·화가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꾸미고 지켜내야 한다.」 — 1951년 수필 「음악과 삶」에서

혁명 후 18년간 서방에서 활동하다 1936년 귀환한 작곡가. 『로미오와 줄리엣』, 『피터와 늑대』, 『알렉산드르 넵스키』로 소비에트 모더니즘을 구축했고, 1948년 형식주의 공격에도 창작을 이어갔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예이젠시테인과의 협업: 영화음악의 이정표

프로코피예프는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과 함께 영화음악사에서 가장 긴밀한 감독-작곡가 협업 중 하나를 이루었다. 두 사람의 첫 합작품 『알렉산드르 넵스키』(1938)는 예이젠시테인의 첫 유성영화였으며, 프로코피예프는 단순한 반주가 아니라 영화의 구조 자체에 음악적으로 관여했다. 일부 장면은 촬영된 필름에 맞춰 작곡했고, 다른 장면은 프로코피예프의 녹음된 악보에 맞춰 예이젠시테인이 편집했다. 예이젠시테인은 "우리는 누가 먼저 다음 단계를 밟을지 오랫동안 흥정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빙상 전투' 시퀀스의 30분간 이어지는 음악은 서사적 영화 전투 장면의 모범이 되었으며,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이 음악을 "영화를 위해 쓰인 최고의 음악"이라 평했다.

두 번째 협업 『이반 뇌제』(1944–46)에서 협업은 더욱 긴밀해졌다. 프로코피예프는 장면을 두세 번만 보고도 다음날 완전한 관현악 스케치를 내놓을 수 있었으며, 예이젠시테인은 음악이 몽타주 리듬을 결정하게 했다. 이 영화의 음악은 프로코피예프 생전에 출판되지 못했으나, 후일 오라토리오와 발레로 편곡되어 무대에서 독자적 생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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