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이민과 귀환을 가로지른, 20세기 소비에트 음악의 거장
「작곡가는 시인·조각가·화가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꾸미고 지켜내야 한다.」 — 1951년 수필 「음악과 삶」에서
혁명 후 18년간 서방에서 활동하다 1936년 귀환한 작곡가. 『로미오와 줄리엣』, 『피터와 늑대』, 『알렉산드르 넵스키』로 소비에트 모더니즘을 구축했고, 1948년 형식주의 공격에도 창작을 이어갔다.
경력 연표
- 1904–1914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랴도프 등에게 사사, 작곡과 피아노로 졸업
- 1914–1918『스키타이 모음곡』, 『고전 교향곡』, 제1바이올린 협주곡 발표 — 러시아 모더니즘의 기수로 부상
- 1918–1936미국·독일·프랑스에서 망명 활동 — 디아길레프와 협업,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제3피아노 협주곡, 『방탕한 아들』 발표
- 1936소련으로 영구 귀환 — 『피터와 늑대』 초연,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 초연
- 1938–1945예이젠시테인 영화 『알렉산드르 넵스키』·『이반 뇌제』 음악, 오페라 『전쟁과 평화』, 제5교향곡 발표
- 1948즈다노프 비판 — '형식주의자'로 공격받고 여러 작품 연주 금지, 이후 비밀 명령으로 철회됨
- 1949–1953제7교향곡, 『돌꽃』, 첼로 교향협주곡 등 후기 걸작을 작곡하며 스탈린과 같은 날 사망
관련 역사 사건
예이젠시테인과의 협업: 영화음악의 이정표
프로코피예프는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과 함께 영화음악사에서 가장 긴밀한 감독-작곡가 협업 중 하나를 이루었다. 두 사람의 첫 합작품 『알렉산드르 넵스키』(1938)는 예이젠시테인의 첫 유성영화였으며, 프로코피예프는 단순한 반주가 아니라 영화의 구조 자체에 음악적으로 관여했다. 일부 장면은 촬영된 필름에 맞춰 작곡했고, 다른 장면은 프로코피예프의 녹음된 악보에 맞춰 예이젠시테인이 편집했다. 예이젠시테인은 "우리는 누가 먼저 다음 단계를 밟을지 오랫동안 흥정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빙상 전투' 시퀀스의 30분간 이어지는 음악은 서사적 영화 전투 장면의 모범이 되었으며,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이 음악을 "영화를 위해 쓰인 최고의 음악"이라 평했다.
두 번째 협업 『이반 뇌제』(1944–46)에서 협업은 더욱 긴밀해졌다. 프로코피예프는 장면을 두세 번만 보고도 다음날 완전한 관현악 스케치를 내놓을 수 있었으며, 예이젠시테인은 음악이 몽타주 리듬을 결정하게 했다. 이 영화의 음악은 프로코피예프 생전에 출판되지 못했으나, 후일 오라토리오와 발레로 편곡되어 무대에서 독자적 생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