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이바노비치 스크보르초프-스테파노프

Иван Иванович Скворцов
소련 러시아 1870–1928 ○ 장티푸스

『자본』을 러시아어로 옮기고 최초의 재무인민위원을 지낸 볼셰비키 지식인

「수동적으로 굶주리고 말없이 죽어가는 농촌 — 아니다, 이것은 사회 발전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가 아니다」 — 1919년 회고록에서 1891–1892년 기근이 자신의 세대에 끼친 영향을 회고하며

1898년 입당한 초기 볼셰비키. 마르크스 『자본』의 러시아어 번역을 주도했으며, 레닌이 최고의 번역으로 꼽은 판본을 남겼다. 1917년 10월 소비에트 정부의 초대 재무인민위원에 임명되었고, 이후 『이즈베스티야』와 『레닌그라드스카야 프라우다』 편집장, 레닌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1920년대 소비에트 철학 논쟁에서 '기계론자' 진영을 이끌었고, 야로슬랍스키와 함께 전투적 무신론 운동의 주요 이론가로 활동했다. 1925년부터 사망까지 중앙위원을 지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기계론자 진영의 지도자 — 1920년대 소비에트 철학 논쟁

1924년 레닌 사후 소비에트 철학계는 '기계론자'와 '변증론자'로 갈라져 격렬한 전소비에트 규모의 논쟁에 돌입했다. 스크보르초프-스테파노프는 류보피 악셀로트-오르토독스, 아르카디 티미랴제프, 블라디미르 사라뱌노프 등과 함께 기계론자 진영을 이끌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자연과학(특히 물리학과 생물학)의 결론과 분리될 수 없으며, '과학과 별개인 철학함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스크보르초프-스테파노프는 1925년 저서 『사적 유물론과 현대 자연과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과학과 분리되고 고립된, 마치 특별한 '특수한 연구 방법'을 가진 듯한 어떤 '철학하기'의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했다. 이에 맞선 변증론자 진영은 아브람 데보린과 그의 제자들(얀 스텐, 니콜라이 카레프, 이반 루폴 등)이 중심이었으며, 이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자연과학의 단순한 일반화가 아니라 독자적인 지위와 고유한 방법론을 지닌 학문이라고 반박했다. 논쟁은 학술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 성격을 띠었고, 양측은 서로를 이상주의, 수정주의, 반마르크스주의라고 비난했다. 1929년 제2차 전소비에트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기관 회의에서 기계론자들은 공식적으로 패배했으며, 그들의 입장은 '저속한 진화론'과 '실증주의'로 규정되어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에서 이탈한 것으로 단죄되었다. 1930년대 초 스탈린의 개입으로 데보린파 또한 '멘셰비키적 관념론'이라는 낙인이 찍혀 숙청되었고, 이로써 소비에트 철학의 자율적 논쟁 시대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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