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미하일로비치 미호엘스

Соломон Михайлович Михоэлс
소비에트 러시아 (유대계) 1890–1948 ✕ 암살

스탈린의 전쟁 선전을 위해 세계를 누비고, 스탈린의 명령으로 암살당한 이디시어 연극의 거장

고든 크레이그는 모스크바에서 미호엘스의 《리어왕》을 본 후 이렇게 썼다: '나는 미호엘스의 리어 연기처럼 그토록 깊이, 핵심까지 뒤흔든 연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소비에트 이디시어 연극의 최대 거장으로, 모스크바 국립 유대극장(GOSET)의 예술감독을 1929년부터 사망 시까지 맡아 이디시어 무대에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유대 민족 정체성을 융합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이디시어 공연(1935)으로 세계 연극계의 찬사를 받았으며, 인민예술가 칭호와 스탈린상을 수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반파시스트 위원회 초대 의장으로서 미국·캐나다·멕시코·영국을 순회하며 소비에트 전쟁 수행을 위한 재정적·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1948년 스탈린의 직접 명령으로 MGB 요원들에게 암살당했으며, 그의 죽음은 전후 소비에트 국가 반유대주의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반파시스트 위원회 활동과 전후 탄압

1941년 8월 24일 미호엘스는 모스크바에서 유대인 문화계 인사들과 함께 나치 독일에 맞선 투쟁에 세계 유대인이 동참하라고 호소하는 라디오 방송을 이끌었다. 1941~1942년 겨울 창설된 유대인 반파시스트 위원회(JAC)의 의장으로서 그는 이디시어 작가 도비드 베르겔손, 페레츠 마르키시, 이치크 페페르와 러시아어로 활동한 일리야 에렌부르크, 바실리 그로스만 등과 함께 서방의 소련 지원을 얻기 위해 활동했다. 1943년 미호엘스와 페페르는 미국을 중심으로 멕시코·캐나다·영국을 포함한 7개월 순회에 나서 여러 도시에서 연설하고 전쟁 수행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모금했다. 7월 8일 뉴욕 폴로 그라운즈에는 5만 명이 그들을 맞이했다.

귀국 뒤 위원회는 전쟁 중 나치 점령지에서 살해된 유대인 가족의 소식을 접했고, 생존자들의 귀향·친족 수색·교육 재개와 유대인 희생을 기록하는 《검은 책》 편찬을 추진했다. 미호엘스와 페페르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크림반도에 소비에트 유대인 공화국을 세우는 방안도 소련 지도부에 제안했다. 당국은 전쟁 중에는 이런 활동을 막지 않았지만, 냉전이 시작되자 서방과의 접촉 및 위원회의 독자적 활동을 문제 삼았다. 1948년 11월 위원회가 폐쇄되고 기록물이 압수되었으며, 관련 인사들이 체포되었다. 미호엘스는 그해 1월 이미 살해된 상태였다. 그의 암살과 뒤이은 위원회 탄압은 전시 동원에 활용된 유대인 공동체의 조직과 대외 연계가 전후 국가 탄압의 표적이 된 경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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