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그리고리예비치 모길렙스키

Соломон Григорьевич Могилевский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885–1925 ✕ 항공사고

소비에트 대외정보기관의 첫 책임자: 이녜의 토대를 놓은 8개월

1921년 초대 이녜 부장으로 취임한 모길렙스키에게 주어진 것은 겨우 몇 명의 요원과 모스크바의 허름한 사무실이 전부였다. 그로부터 불과 8개월 후 소비에트 해외정보기관의 첫 거점망이 유럽과 중동에 뿌리를 내렸다.

파블로그라드의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18세에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직업혁명가. 1904년 체포된 뒤 스위스로 망명해 제네바에서 레닌을 만났고, 그의 추천으로 볼셰비키 분파에 합류했다. 1919년 전연방비상위원회(체카)에 배치되어 모스크바 체카와 특별부에서 활동했으며, 1921년 8월 GPU 해외부(INO)의 초대 부장으로 임명되어 소비에트 대외정보기관의 기초 조직을 구축했다. 1922년 자캅카스 GPU 전권대표 겸 의장으로 전임되어 튀르키예·이란 방면 첩보망을 지휘하고 1924년 그루지야 8월봉기 진압에 참여해 적기훈장을 받았다. 1925년 3월 트빌리시 근방에서 발생한 의문의 항공기 폭발 사고로 먀스니코프, 아타르베코프와 함께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이녜 지휘와 해외정보망의 초기 구축

1921년 8월 6일 솔로몬 모길렙스키는 야코프 다브티안의 뒤를 이어 전러시아 비상위원회(체카) 해외부(이녜) 책임자가 되었다. 이녜는 1922년 체카가 국가정치총국(GPU)으로 개편된 뒤에도 해외정보 업무를 맡았다. 모길렙스키의 재임 중 중요한 과제는 제노바 국제회의를 앞두고 외국 정부들의 계획에 관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러시아 해외정보국의 회고적 서술에 따르면 이녜는 회의 준비 과정에서 정보를 얻고, 회의 기간에는 소련 대표단에 대한 테러 계획을 알게 된 서신을 가로챘다. 이 서술은 이녜가 독일 베를린에 적군 정보국과 함께 합법적 거점을 세워 유럽 정보망의 중심으로 삼았다고도 한다. 1922년 3월 모길렙스키는 자캅카스 GPU 전권대표 겸 자캅카스 체카 의장으로 옮겼다. 따라서 그의 이녜 재임은 짧았지만, 해당 기관은 그 시기 해외에서 정치·군사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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