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대외정보기관의 첫 책임자: 이녜의 토대를 놓은 8개월
1921년 초대 이녜 부장으로 취임한 모길렙스키에게 주어진 것은 겨우 몇 명의 요원과 모스크바의 허름한 사무실이 전부였다. 그로부터 불과 8개월 후 소비에트 해외정보기관의 첫 거점망이 유럽과 중동에 뿌리를 내렸다.
파블로그라드의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18세에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직업혁명가. 1904년 체포된 뒤 스위스로 망명해 제네바에서 레닌을 만났고, 그의 추천으로 볼셰비키 분파에 합류했다. 1919년 전연방비상위원회(체카)에 배치되어 모스크바 체카와 특별부에서 활동했으며, 1921년 8월 GPU 해외부(INO)의 초대 부장으로 임명되어 소비에트 대외정보기관의 기초 조직을 구축했다. 1922년 자캅카스 GPU 전권대표 겸 의장으로 전임되어 튀르키예·이란 방면 첩보망을 지휘하고 1924년 그루지야 8월봉기 진압에 참여해 적기훈장을 받았다. 1925년 3월 트빌리시 근방에서 발생한 의문의 항공기 폭발 사고로 먀스니코프, 아타르베코프와 함께 사망했다.
경력 연표
- 1902파블로그라드 RSDLP 조직 입당
- 1904체포, 이후 스위스 망명 — 제네바에서 레닌과 만남
- 1906–1916러시아 귀국 후 예카테리노슬라프 선전활동, 대학 수학, 군 복무
- 1917민스크 RSDLP 위원, 4월 당 대회 대의원, 10월 혁명 참가
- 1917–1919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모스크바·키예프 사법기관, 제12군 혁명재판소
- 1919–1920모스크바 체카, 좌파 SR 음모 적발; GPU 특별부 전권대표
- 1921–1922GPU 해외부(INO) 부장 — 소비에트 대외정보기관 초대 책임자
- 1922–1925자캅카스 GPU 전권대표 겸 의장 — 튀르키예·이란 첩보, 1924년 8월봉기 진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