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테트라오와 초대 국가주석
1949년 미국 외교관에게 라오스를 ‘계급 없는 불교 국가’라 했던 왕자가, 뒷날 ‘붉은 왕자’로 불리는 공산 라오스의 초대 국가주석이 됐다.
라오스 왕족 출신의 혁명 지도자로 파테트라오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연립정부와 민족화해 과정에 참여했으며 1975년 인민민주공화국의 초대 국가주석이 됐다. 당과 정부를 이끈 카이손 폼비한과 국가 내 역할이 달랐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45라오이사라 정부 외교장관·라오스 해방군 총사령관
- 1950라오스자유전선(파테트라오) 창립·의장
- 1956라오스애국전선(네오라오학삿) 의장
- 1957–1958계획·재건·도시개발 장관
- 1962–1963부총리 겸 경제계획 장관
- 1974국가정치협의회 의장
- 1975–1991라오인민민주공화국 초대 국가주석 (1986년부터 포우미 봉비칫이 대행)
관련 역사 사건
국가와 경제정책의 맥락
라오스 왕족 출신의 혁명 지도자로 파테트라오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연립정부와 민족화해 과정에 참여했으며 1975년 인민민주공화국의 초대 국가주석이 됐다. 당과 정부를 이끈 카이손 폼비한과 국가 내 역할이 달랐다.
1979년부터 시작된 정책 수정에 이어 가격 통제 완화, 무역 규제 축소, 외국인 투자 허용과 국영기업 개편이 진행됐다. 지방에 권한을 넘기는 분권과 국가의 계획 수립은 병존했다. 카이손 폼비한의 지도 아래 개혁은 정치적 다당제 전환과 분리되어 추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