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궁전을 폭파한 목수 혁명가, 러시아 최초의 정치적 노동자 조직 창립자
"이 길에서는 돌아올 수 없다"며 눈물로 노동자들에게 테러를 만류했으나, 스스로 겨울궁전 지하에 다이너마이트를 쌓았다 — 동료의 증언.
뱌트카 출신 목수로, 1878년 러시아 최초의 정치적 노동자 조직 '북러시아 노동자 동맹'을 빅토르 옵노르스키와 함께 창립했다. 1880년 겨울궁전에 목수로 위장 취업해 황제 식당 아래에 다이너마이트를 반입·폭파했으나 알렉산드르 2세는 지각으로 살아남았다. 1881년 3월 이후 인민의 의지당 집행위원이 되었고, 1882년 오데사에서 스트렐니코프 검사 암살에 가담해 체포·처형당했으며, 레닌은 크렘린 사무실에 마르크스와 나란히 할투린의 고부조를 걸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74–1875뱌트카 사범학교 입학, 성적 불량으로 퇴학; 목수 기술 습득
- 1875–1877페테르부르크로 이주, 공장들에서 목수로 일하며 혁명 서클 가입; 카잔 시위(1876) 참가 후 비합법 지위로 전환
- 1878빅토르 옵노르스키와 함께 '북러시아 노동자 동맹' 창립, 강령 작성 — 러시아 최초의 정치적 노동자 조직
- 1879.9스테판 바티시코프라는 가명으로 겨울궁전 목수로 취업, 다이너마이트를 매일 조금씩 반입
- 1880.2.5겨울궁전 지하실에서 폭탄 폭파 — 귀빈 지각으로 황제는 무사했으나 근위병 11명 사망, 56명 부상
- 1880–1881모스크바로 도피, 노동자 선전 활동 지속
- 1881.3인민의 의지당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출
- 1882.3.18오데사에서 니콜라이 젤바코프와 함께 스트렐니코프 검사 암살; 마부로 위장했으나 체포
- 1882.3.22오데사에서 가명으로 군사재판 후 교수형 — 겨울궁전 폭파범임이 밝혀지지 않은 채 처형
북러시아 노동자 동맹의 조직과 활동
1878년 12월 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 서클들을 바탕으로 북러시아 노동자 동맹이 결성되었다. 처음 조직한 사람들과 별도로, 스테판 할투린과 빅토르 옵노르스키, 표트르 모이세옌코가 곧 지도부를 맡았다. 동맹은 정당이 아니라 비밀결사 형태였으며, 1878년 12월 규약과 강령을 채택하고 이듬해 1월 「러시아 노동자들에게」라는 전단으로 공개했다. 프로그램은 전제정의 타도와 민주적 자유, 사회제도 개혁을 내걸었다. 수도의 노동자 지구에 지부를 두고 노동자 대표가 중앙 서클에 참여하도록 했으며, 불법 도서관과 대부·저축 금고도 조직했다.
동맹원은 약 200명에 이르렀고, 파업을 지도하고 전국 조직으로 확대하려 했다. 모스크바와 헬싱키에 지부를 열었으며, 1880년 2월에는 인쇄소를 가동해 전단과 노동자 신문 「노동자의 새벽」 첫 호를 만들기 시작했다. 경찰은 인쇄 작업 중 동맹을 급습했고, 당국은 그해 동맹을 해산시켰다. 체포를 피한 일부 회원은 인민의 의지당에 합류했다. 할투린의 조직 활동은 노동자들 사이의 정치 선전과 조직화를 결합했지만, 비밀결사 중심의 구조와 경찰 탄압 아래 활동은 지속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