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린 전기로 '잃어버린 대안'을 제기하고 소련 개혁 가능성을 끝까지 주장한 미국의 러시아사 학자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스탈린의 등장과 흐루쇼프의 몰락과 소련의 종말, 각각에 대안이 존재했다."
스티븐 코언은 소비에트학계에서 소련 체제가 본질적으로 개혁 불가능했다는 통념에 가장 체계적으로 반박한 학자였다. 1973년 『부하린과 볼셰비키 혁명』에서 니콜라이 부하린의 정치노선을 스탈린주의에 대한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하며, 소련사가 단선적 필연이 아니라 분기점들의 연쇄였음을 주장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고 부하린의 사후 복권에 기여했으며, 소련 붕괴 후에는 미국의 대러 정책을 '실패한 십자군'으로 비판하면서 냉전 이후에도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워싱턴의 합의에 맞섰다. 말년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게이트를 둘러싸고 친푸틴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미국 언론의 러시아 보도가 냉전기보다 더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주장하며 고립을 무릅쓰고 소신을 지켰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68–1998프린스턴 대학교 정치학 교수
- 1982–1987『더 네이션』 칼럼 '소비에티쿠스' 연재
- 1985–1991CBS 뉴스 고르바초프 개혁 자문·해설
- 1998–2011뉴욕대학교 러시아·슬라브학 교수
- 2011–2020뉴욕대학교 명예교수, 저술·방송 활동
- 2015–2020미국 동서화합위원회 공동 설립 이사
관련 역사 사건
부하린 전기와 소비에트사의 대안
1973년 출간한 『부하린과 볼셰비키 혁명』에서 코언은 니콜라이 부하린의 정치적 생애를 소비에트사의 핵심 논쟁 속에 놓았다. 동시대 서평은 이 책이 부하린에 관한 최초의 대규모 연구였으며, 소련 연구에서 이용 가능한 자료와 학술적 분석의 진전을 보여 주었다고 평가했다. 코언은 부하린의 사상과 스탈린과의 갈등을 통해 혁명 이후의 역사를 이미 정해진 경로로만 볼 수 없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부하린의 정치적 역할을 조명하는 일은 스탈린 체제의 억압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체제가 굳어지는 과정에서 다른 정치적 가능성이 어떤 갈등과 선택을 거쳐 좌절되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코언의 서술은 부하린을 무결한 대안으로 만들지 않았다. 당시 서평은 부하린이 1928년까지 스탈린과 협력하고 다른 이들에 대한 억압 조치를 지지한 책임도 지적했다. 코언은 부하린의 정책적 반대와 그 자신의 앞선 정치적 선택을 함께 다루며, 대안의 존재와 그 한계를 동시에 살폈다. 이 문제의식은 뒤에 『소비에트 경험 다시 생각하기』에서 볼셰비키 내부의 스탈린주의 대안을 더 넓게 검토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는 코언이 소비에트사의 필연론에 반대했다는 평가의 근거가 되었지만, 그의 해석을 학계의 합의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