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외동딸이자 크렘린을 버린 최초의 목격자
2010년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그는 내 인생을 망가뜨렸다" — 문학 공부를 거부하고 카플레르를 체포했을 때.
이오시프 스탈린의 외동딸로, 1967년 인도에서 미국으로 망명하여 크렘린 내부를 서방에 최초로 증언한 회고록으로 국제적 파장을 일으켰다. 《친구에게 보내는 스무 통의 편지》는 아버지의 사적 면모와 소비에트 지배층의 삶을 폭로한 기록으로 평가되며, 이후 귀환과 재망명을 거듭하면서도 평생 스탈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력 연표
- 1949모스크바대학 역사학부 졸업
- 1954문헌학 후보학위 취득
- 1956–1967세계문학연구소 연구원 및 번역가
- 1967인도에서 미국으로 망명, 《친구에게 보내는 스무 통의 편지》 출간
- 1978미국 시민권 취득, 라나 피터스로 개명
- 1984–1986소련 귀환 후 재차 미국으로 이주
관련 역사 사건
1967년 망명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의 망명은 냉전기 가장 극적인 개인적 일탈 중 하나였다. 1966년 12월, 그녀는 인도인 연인 브라제시 싱의 유해를 갠지스 강에 뿌리기 위해 소련 당국의 허가를 받아 인도로 향했다. 소련 지도부는 그녀의 첫 해외여행을 극도로 경계했고, 알렉세이 코시긴 총리는 "정통 힌두교도들은 남편과 함께 과부를 화장하기도 한다"며 위험을 경고했지만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67년 3월 6일 저녁, 델리 주재 소련 대사관에 머물던 알릴루예바는 작은 여행가방 하나를 들고 택시를 타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었지만 당직 해병에게 "나는 스탈린의 딸이며,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급히 호출된 체스터 볼스 대사는 그녀에게 줄이 그어진 메모지를 건네며 자신이 누구이고 왜 미국으로 가려 하는지 적어보라고 했다. 그녀는 유창한 영어로 16쪽에서 18쪽에 달하는 글을 써내려갔다. 볼스 대사는 워싱턴에 전문을 보내면서 "자정까지 지시가 없으면 내 책임 하에 비자를 발급하겠다"고 덧붙였다. 답신은 오지 않았다.
볼스는 그녀에게 "정말 이 큰 걸음을 확신하느냐"고 재차 물었다. 알릴루예바는 "만약 거절한다면 오늘 밤 기자들에게 가서 민주주의 인도도, 민주주의 미국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발표하겠다"고 응수했다. 그날 밤 자정을 넘긴 1시, 그녀는 CIA 요원의 호위 아래 로마행 콴타스 항공편에 올랐다. 소련은 인도 정부를 맹비난했고, 로마와 스위스를 거쳐 1967년 4월 뉴욕에 도착한 그녀는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아버지의 유산과 소비에트 체제를 공개 비판했다. 크렘린 내부자의 첫 서방 망명은 국제적 센세이션이었고, 그해 출간된 《친구에게 보내는 스무 통의 편지》는 그 파장을 배가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