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

Трофим Денисович Лысенко
소련 우크라이나 1898–1976 ○ 자연사

미추린 농생물학으로 소비에트 생물학을 30년간 지배한 농학자

「당 중앙위원회가 나의 보고를 검토했고 승인했다」 — 1948년 8월 VASKhNIL 총회 폐막사에서. 이 한마디로 소련 전역에서 고전유전학이 금지되었다.

우크라이나 농민가정 출신 소비에트 농학자. 추파처리(야로비자치야) 기술로 주목받아 1930년대 중반부터 소비에트 생물학계를 장악했다. 멘델유전학을 부르주아 사이비과학으로 공격하고 후천획득형질 유전을 주장했으며, 1948년 8월 VASKhNIL 총회 승리로 소련 전역에서 고전유전학이 금지되었다. 감자 여름심기·기장 재배법 등 실용적 농업기술도 제안했다. 3개 스탈린상·8개 레닌 훈장·사회주의노동영웅(1945) 수상. 흐루쇼프 실각 후 1965년 해임, 1976년 모스크바에서 사망. 당원이 아니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미추린 농생물학: 이론, 제도화, 그리고 소비에트 생물학의 분기

리센코 학설의 핵심은 식물의 '단계적 발달 이론'이었다. 식물이 일생 동안 여러 발달 단계를 통과해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으며, 각 단계로의 이행에는 특정한 환경 조건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이 이론에서 출발해 리센코는 추파처리, 여름 감자 재배, 면화 적심(摘心) 등 실용적 농업기술을 도출했다. 단계적 발달 이론 자체는 N. I. 바빌로프와 P. M. 주콥스키 같은 반대파 학자들조차 초기에는 과학적 기여로 인정했다.

그러나 리센코의 이론적 야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멘델-모건 유전학을 '부르주아 사이비과학'으로 규정하고, 유전자와 염색체 이론을 전면 부정했다. 대신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하며, 환경 조건을 변화시키면 식물의 유전적 본성을 원하는 방향으로 '단련'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주장의 실질적 귀결은, 충분한 시험을 거치지 않은 품종의 초고속 보급, 품종시험 제도의 형해화, 그리고 바빌로프를 비롯한 정통 유전학자들에 대한 조직적 공격이었다.

리센코의 입지는 1936년 VASKhNIL 제4차 총회에서 '유전학의 두 방향'이라는 보고로 공개 천명된 이후 급속히 확대되었다. 1938년 VASKhNIL 총재에 취임했고, 1940년 바빌로프가 체포된 뒤에는 소련 과학아카데미 유전학연구소 소장까지 겸했다. 정점은 1948년 8월 VASKhNIL 총회였다. 리센코는 '당 중앙위원회가 나의 보고를 검토했고 승인했다'는 폐막사로 사실상 스탈린의 비호 아래 있음을 공표했고, 이 한마디로 소련 전역에서 멘델유전학 교육과 연구가 금지되었다. 수백 명의 유전학자들이 해직되었고, 식물 바이러스 연구까지 위축되면서 감자·곡물 분야의 실질적 피해가 뒤따랐다. 소련 생물학은 세계 과학의 주류로부터 수십 년간 분기했으며, 이 분기는 흐루쇼프 실각과 함께 리센코가 1965년 해임된 이후에야 비로소 수습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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