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팅푸

蒋廷黻
중국국민당 중화민국 중국 (한족) 1895–1965 ○ 자연사

소련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게 만든, 안보리 의장석의 국민당 외교관

1950년 1월, 의장석에 앉은 장팅푸를 향해 말리크가 '이것은 회의가 아니라 회의의 패러디'라고 외치고 퇴장했다.

청나라 외교문서를 실증적으로 연구한 역사가에서 중화민국 외교관으로 전환한 인물이다. 컬럼비아대에서 박사를 마치고 난카이·칭화대에서 중국 근대외교사 연구를 개척했으며, 1935년 학계를 떠나 국민정부에 합류해 주소대사와 상임 유엔대표를 지냈다. 1950년 1월 안보리 의장으로 회의를 주재할 때 소련 대표 말리크가 중공이 아닌 국민당 대표와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며 퇴장했고, 이 공백은 6월 한국전쟁 유엔군 결의가 거부권 없이 통과되는 결정적 조건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중일전쟁기 외교와 중국 보급로

1935년 학계를 떠나 국민정부에 들어간 장팅푸는 1936년부터 1938년까지 모스크바 주재 중화민국 대사를 지냈다. 1938년 1월 파리 주재 미국 대사 윌리엄 불릿이 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에는 장이 최근 대사직에서 물러나 내각 비서로 일하기 위해 귀국할 예정이라고 적혀 있다. 이 기록은 장의 발언을 불릿이 전한 것이므로, 소련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장의 견해로 구별해 읽어야 한다.

장팅푸는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 직접 참전할 것이라는 기대에 회의적이었지만, 소련이 중국에 군수품과 보급품을 외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봉쇄로 기존 보급로가 막힐 가능성에 대비해 버마 경유 수송로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영국 정부의 협조를 구하러 런던으로 가는 중이라고 불릿에게 말했다. 이 기록은 장이 전쟁 수행에 필요한 중국의 물자 조달 문제를 외교 현안으로 다루며 여러 외부 보급 경로를 모색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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