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협상에서 고르바초프의 양보에 맞섰던 소련 최고의 독일 전문가
“1980년대 초 서독은 소련군 철수와 동독의 바르샤바조약 탈퇴만으로 1000억 마르크의 무상 차관을 제안했다. 고르바초프는 아르히즈에서 140억 마르크를 받아들였다.” — 독일 통일 협상의 대가에 대해
소련 최고의 독일 문제 전문가로, 흐루쇼프와 그로미코의 연설문 작성자로 외교 경력을 시작해 1971–1978년 서독 대사를 지냈다. 1988–1991년 CPSU 중앙위원회 국제부장으로서 외무부와 나란히 작동하는 평행 외교 기구를 이끌었고, 1990–1991년 중앙위 서기를 지냈다. 독일 통일 협상에서 고르바초프의 성급한 양보에 가장 강력히 반대한 인물로, 1989년 율리 크비친스키와 함께 쇠퇴하는 소련의 군사적 영향력을 에너지 의존으로 대체하려는 팔린-크비친스키 독트린을 정식화했다. 고르바초프가 통일 독일의 NATO 가입을 사실상 무상으로 허용했다고 비판하며, 모스크바가 최대 1000억 마르크까지 요구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경력 연표
- 1950–1952독일 내 소련통제위원회 근무
- 1952–1958소련 외무부 정보위원회
- 1959–1971외무부 제3유럽(독일)부장, 그로미코 보좌관, 흐루쇼프 연설문 작성
- 1971–1978주서독 소련 대사
- 1978–1982CPSU 중앙위 국제정보부 제1부부장
- 1983–1986『이즈베스티야』 정치평론가 (실각기)
- 1986–1988노보스티 통신사(APN) 이사회 의장
- 1988–1991CPSU 중앙위 국제부장
- 1990–1991CPSU 중앙위 서기
- 1992–2000함부르크대학 평화연구·안보정책연구소 교수
- 2000–2018모스크바 거주,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MGIMO)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