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틴 드미트리예비치 샤신

Валентин Дмитриевич Шашин
소련 러시아 1916–1977 ○ 자연사

세계 1위 산유국을 만들고도 '무리한 증산'을 경고한 장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병실에서 석유부 장관 업무를 계속했다. 마지막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많은 석유를'이라는 압박에 맞섰다.

바쿠 출신의 석유 기술자로, 12년간 소련 석유부 장관을 지내며 서시베리아 유전의 집중 개발을 통해 소련을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올려놓은 인물. 타트네프티에서 터빈 시추 방식과 대형 블록 조립 공법을 도입해 로마슈킨스코예 유전 개발을 이끌었고, 이후 장관으로서 석유 생산량을 두 배 이상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많은 석유를'이라는 당의 압박에 맞서 합리적 채굴을 주장했으며, 암으로 입원 중에도 병실에서 업무를 계속했다. 레닌상 수상자, 네 차례 레닌 훈장을 받았으며, 타트네프티는 지금도 그의 이름을 달고 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타트네프티와 로마슈킨스코예: '제2의 바쿠'를 현실로

1950년대 초 소련 석유 산업의 최대 과제는 학자 이반 굽킨이 예견한 '제2의 바쿠', 즉 우랄-볼가 지역의 석유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일이었다. 1953년 타트네프티(Tatneft) 시추 담당 부책임자로 부임한 샤신은 타타르 공화국에서 이 과제의 최전선에 섰다.

그가 가장 먼저 돌파한 것은 계절성 문제였다. 타타르의 혹독한 겨울 탓에 매년 여름 정점을 찍은 시추 작업이 겨울이면 급감했다. 샤신은 시추 작업의 전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고 직접 시험을 주도해, 1955년부터 연중 시추 체제를 정착시켰다. 이는 소련 유전 개발에서 오랜 골칫거리였던 계절적 병목을 제거한 돌파구였다.

1956년 타트네프티 책임자로 승진한 샤신은 로마슈킨스코예(Romashkino) 유전의 본격 개발을 이끌었다. 당시 타트네프티는 터빈 시추(turbodrilling) 방식의 시험장이자 선도자였다. 샤신 아래서 시추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고, 대형 블록 조립 공법 도입으로 굴착 장치 설치 시간이 기존의 4분의 1에서 5분의 1로 단축되었다. 또한 그의 주도로 지질탐사 규모가 10배 이상 확대되면서 데본기와 석탄기의 새 고생산성 유층이 연이어 발견되었다.

이러한 기술·조직 혁신의 결과는 극적이었다. 1956년 타트네프티는 1,800만 톤을 생산하며 바시키르를 제치고 소련 최대 산유 지역으로 올라섰다. 1960년에는 소련 전체 석유 생산량이 세계 2위에 오르며 세계 생산의 14%를 차지했고, 그 선봉에는 타타르가 있었다. 샤신이 타트네프티에서 쌓은 실적은 1965년 그를 소련 석유부 장관으로 밀어올린 직접적 배경이었다.

샤신은 이미 장관이 된 뒤에도 현장 기술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았다. 1965년 알메티옙스크에서 새로운 국산 스크루 모터(винтовой забойный двигатель)의 시험 소식을 듣고 직접 현장을 찾았다. 시추 작업자의 실수를 날카롭게 지적할 정도로 숙련된 부로비크(시추 기술자)였던 그는 시험 결과를 확인한 뒤 도입을 승인했고, 이 스크루 모터는 이후 타타르에서 소련 전역과 세계로 퍼져나갔다. 타트네프티는 1977년 그의 사망 직후부터 'V.D. 샤신 이름의 타트네프티'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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