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을 넘어 미국까지: 스탈린의 매, 그리고 마지막 시험비행
1937년 6월 20일, ANT-25기가 밴쿠버의 피어슨 비행장에 착륙하자 미군 장교가 물었다. "어디서 왔소?" 치칼로프가 답했다. "모스크바에서, 북극을 넘어서요."
소련의 시험비행사이자 1930년대 소비에트 항공력의 상징. 폴리카르포프 설계국에서 I-15, I-16 전투기를 시험하며 상승 스핀과 슬로 배럴 롤이라는 새 곡예비행 기동을 창안했다. 1936년 모스크바-우드 섬 9,374km 무착륙 비행으로 소비에트 연방영웅 칭호를 받았고, 이듬해 같은 ANT-25기로 모스크바-북극-밴쿠버(미국) 8,811km를 63시간 만에 횡단하며 북극 항로를 개척했다. 스탈린이 직접 공항에 마중 나올 만큼 대중적 영웅이 되었으나, 1938년 12월 서둘러 추진된 I-180 전투기 초도비행에서 엔진 정지로 추락해 34세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5–1938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19–1921제4카나빈 항공대 항공기 정비공
- 1921–1924예고리옙스크·보리소글렙스크·모스크바·세르푸호프 비행학교 수료
- 1924–1930제1적기전투비행대 전투기 조종사
- 1930–1933NII VVS RKKA 시험비행사
- 1933–1938제39항공공장 시험비행사 (폴리카르포프 설계국)
- 1935–1938공군 곡예비행 부문 책임자
- 1937–1938소비에트 최고회의 대의원 (제1소집)
북극 횡단 비행과 미국 착륙
1936년 모스크바에서 극점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비행을 제안한 치칼로프와 항법사 알렉산드르 벨랴코프, 부조종사 게오르기 바이두코프는 정부의 허가를 얻지 못했다. 대신 그해 7월 20일 모스크바에서 극동으로 출발해 56시간 뒤 오호츠크해 우드섬에 착륙했다. 약 9,375km를 비행한 이 항로는 장거리 무착륙 비행 기록을 세웠고, 승무원은 소비에트 연방영웅 칭호를 받았다. 이 비행으로 북극 항로를 위한 준비와 경험을 쌓은 뒤, 세 사람은 1937년 6월 18일 ANT-25를 타고 모스크바를 떠나 북극을 횡단하는 미국행 비행에 나섰다.
비행 중 악천후와 기체 결빙, 산소 부족 및 연료 문제가 이어졌다. 6월 20일 오리건주 상공에서 목적지로 계획했던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까지 연료가 부족할 것을 판단한 치칼로프는 바이두코프에게 포틀랜드 방향으로 기수를 돌리게 했다. 승무원은 포틀랜드를 지나 컬럼비아강을 건너 워싱턴주 밴쿠버의 피어슨 필드에 착륙했다. 비행 시간은 63시간 16분이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은 이를 세계 최초의 북극 횡단 비행으로 기록하며, 승무원이 통신과 항법에서 겪은 어려움도 설명한다. 이 성과로 치칼로프와 동료들은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이후 소련 항공의 북극 항로 개척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