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 재판의 피고이자 반나치 활동가
불가리아 공산당 활동가. 1933년 디미트로프·포포프와 함께 국회의사당 방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소련으로 갔다. 1941년 불가리아에서 활동하려고 파견된 작전조가 그리스에 잘못 내려진 뒤 전투 중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33불가리아 공산당과 라이프치히 재판
- 19411941년 그리스에서의 죽음
불가리아 공산당과 라이프치히 재판
1919년 불가리아 공산당에 가입한 타네프는 1923년 봉기에 참여했고, 투옥과 망명을 거쳐 소련에서 공부했다. 1931~1932년에는 불가리아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활동했다. 1933년 베를린에서 체포되어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의 피고가 되었으나, 디미트로프·포포프와 함께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41년 그리스에서의 죽음
1941년 10월 5~6일 밤 타네프는 점령군 후방에서 활동할 특수조와 함께 불가리아를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작전조는 그리스에 잘못 내려졌고 타네프는 10월 9일 전투에서 사망했다. 일부 영문 자료는 월일을 뒤바꾸어 적으므로 불가리아어 자료 및 소련 백과사전과 구분해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