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야포 설계의 거장, 속도설계 방식의 창시자
쿨리크 원수는 '네 포는 필요 없다'고 말했고, 그라빈은 '어째서입니까?'라고만 답할 수 있었다. 그는 공장에서 비밀리에 ZiS-3를 양산했고, 1942년 2월 정식 채택될 때 이미 1천 문 이상이 전선에 있었다.
바실리 그라빈은 소련의 가장 중요한 포병 설계자로, 제2차 세계대전 최대 생산 화포인 ZiS-3 76.2mm 사단포(10만 3천 문 이상)를 비롯해 ZiS-2 57mm 대전차포, T-34의 주무장 F-34 전차포, BS-3 100mm 야포를 설계했다. 고리키 제92공장 수석설계자와 중앙포병설계국(TsAKB) 국장을 지내며 신형 화포 개발을 수년에서 수개월로 단축한 속도설계 방식을 확립했고, 인간공학이란 용어조차 없던 시절 포 설계에 생리학자를 참여시켰다. 설계와 생산기술을 통합한 그의 방식은 전시 화포의 컨베이어 조립과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전후 미사일 시대의 도래로 그의 영향력은 쇠퇴했고, 후기 설계 중 S-60 대공포만이 정식 채택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0– 산업·생산 운영 · 소련 · 중공업 · 군수공업
경력 연표
- 1930크라스니 푸틸로베츠 공장 설계국 기술자
- 1932GKB-38 제1부국장
- 1933–1942고리키 제92공장 수석설계자 겸 포병설계국장
- 1942–1946중앙포병설계국(TsAKB) 국장 겸 수석설계자
- 1946–1957포병무장과학연구소(NII AV) 소장 겸 수석설계자
- 1957–1959TsNII-58 소장 겸 수석설계자
- 1960–1980바우만 모스크바 고등공과대학 교수
관련 역사 사건
전시 속도설계와 화포의 대량생산
1934년 바실리 그라빈은 고리키의 제92공장 수석설계자가 되었다. 그의 설계진은 76mm F-22를 개발해 1936년 채택시켰고, 이후 개량형 F-34는 T-34 전차의 주무장이 되었다. 대조국전쟁 중 제92공장은 붉은 군대의 주요 화포 공급처였다. 그라빈은 화포 생산을 늘리기 위해 설계와 생산 준비를 결합한 속도 종합설계 방식을 도입했고, 신형 포의 개발을 수개월로 줄였다. 그 결과 76mm ZiS-3는 1942년형으로 채택되기 전인 1941년 8월부터 군에 공급되기 시작했으며, 1941~1945년 4만 8천 문 이상 생산되어 전쟁 중 가장 많이 생산된 포가 되었다. 1942년 11월 중앙포병설계국(TsAKB)이 창설되자 그라빈은 국장 겸 수석설계자로 임명되었다. 그의 집단은 ZiS-2 대전차포, BS-3 야포, T-34-85용 ZiS-S-53 전차포도 설계했다. 전후 설계 가운데서는 S-60 57mm 대공포만이 채택되었으며, 1950년대 중반부터 로켓·핵무기 분야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