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르크 구 볼셰비키 조직자, 여성의 날 시위를 혁명으로 이끌다
2월 28일, 임시정부 수립 소식을 들은 카유로프는 병사들 앞에서 "동지들이여, 한 지주를 다른 지주로 바꾸기 위해 사흘 동안 페트로그라드 거리에서 노동자의 피가 흘렀단 말인가?"라고 외쳤다.
1898년 입당한 금속노동자 출신 볼셰비키로, 페트로그라드 비보르크 구당에서 활동하며 1917년 2월 23일 여성 방직 노동자들의 국제 여성의 날 파업을 당 위원회의 신중론을 뒤집고 혁명적 총파업으로 전환시켰다. 2월 27일에는 무장분견대를 이끌고 무기고를 습격해 소총을 확보하고 감옥을 열어 수감된 혁명가들을 해방시켰으며 경찰서를 공격했다. 혁명 후 5군 정치부장을 거쳐 경제 행정에서 일했고, 1932년 아들과 함께 류틴의 강령을 받든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동맹'을 결성하여 스탈린에 공개적으로 맞섰다가 1936년 카자흐스탄 유형지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2–1917 사회운동·조직 · 소련공산당·볼셰비키
- 1932 사회운동·조직 ·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동맹(류틴 그룹)
경력 연표
- 1898RSDLP 입당, 볼셰비키 파벌
- 1905소르모보 12월 무장봉기 참가
- 1912–17페트로그라드 비보르크 구당 비밀 활동
- 1917.022월 혁명 주도, 비보르크 구 소비에트 의장
- 1917.07레닌을 자택에 은닉
- 1918–20제5군 정치부장 (동부전선)
- 1921–22시브레브콤 특별전권위원, 시비르 당 숙청위 의장
- 1932'마르크스-레닌주의자 동맹' 결성, 체포, 3년 유형
- 1935–36재체포, 카자흐스탄 3년 유형, 유형지에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1917년 2월 혁명: 파업과 봉기 속의 노동자 조직
카유로프의 회고록은 1917년 2월 혁명이 당의 사전 계획을 그대로 실행한 사건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여성의 날을 앞둔 2월 23일 새벽 레스노이의 여성 집회에서 부분적 행동을 자제하고 당 위원회의 지침을 따르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날 섬유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고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도 지지를 표했다. 카유로프는 이를 당 구위원회 결정의 무시로 받아들였지만, 빵 배급을 기다리는 긴 줄이 파업의 실제 계기였다고 인정했다. 그는 신중론을 고수하는 대신 모든 노동자를 거리로 이끌어 파업과 시위를 함께 조직하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이를 실행했다. 그의 서술은 노동자들의 행동이 당 지도부의 지시보다 앞서 나갔으며, 조직가들이 그 움직임에 대응하고 방향을 잡으려 했음을 드러낸다.
이후 카유로프와 동료들은 노동자들과 병사들 사이에서 선동했고, 시위대가 군대와 맞닥뜨린 상황에서도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2월 25일 시위에서 병사들이 총을 쏘지 않도록 설득하려 했지만, 발포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기록했다. 다음 날인 26일에는 시위대가 무장 진압과 총격에 직면해 봉기가 좌절될 듯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장면은 혁명을 노동자의 주도적 행동과 그에 대한 탄압, 군인들의 태도 변화가 맞물린 과정으로 보여준다. 다만 이 내용은 사건 당사자인 카유로프가 뒤에 쓴 회고이므로, 현장에 대한 그의 관찰과 해석을 구분해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