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파블로비치 미신

Василий Павлович Мишин
러시아 러시아 1917–2001 ○ 자연사

코롤료프를 이어 소유즈·살류트·N-1을 책임진 실천적 우주설계자

1966년 1월 14일, 코롤료프가 수술대에서 사망했다. 크렘린은 미신에게 전화를 걸었고, 해질녘에는 그가 소련 우주계획 전체를 짊어지고 있었다.

모스크바 근교 이탄촌에서 태어나 ЦАГИ 견습공으로 출발했다. 1945년 독일에서 V-2를 조사하며 코롤료프를 만난 후 오랜 제1부수석설계자로 일했고, 1966년 코롤료프 사후 OKB-1(ЦКБЭМ) 수석설계자가 되었다. 그의 지휘 아래 소유즈 우주선, 살류트 우주정거장, 달로켓 N-1이 개발되었다. N-1은 네 차례 발사 모두 실패했고, 1974년 동료들의 서한으로 해임되면서 소련 달탐사 계획도 함께 종결되었다. 이후 모스크바항공대학에서 30년간 교수로 후학을 길렀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N-1 달로켓과 네 번의 발사 실패

코롤료프 사후 미신이 물려받은 최대 과제는 인류를 달에 보내는 N-1 로켓이었다. 30개의 엔진을 1단에 묶은 이 초대형 발사체는 출발부터 자금 부족과 일정 압박에 시달렸다. 미국이 NASA라는 단일 기구 아래 막대한 예산으로 새턴 V를 개발한 것과 달리, 소련은 국가우주기구조차 없이 경쟁 설계국들이 예산을 나눠 써야 했다.

첫 발사(1969년 2월 3일)는 1분 만에 배관 화재로 실패했고, 두 번째(1969년 7월 3일)는 발사대 위로 추락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세 번째(1971년 6월 22일)에서는 30개 엔진이 처음으로 동시 점화에 성공했으나 예상치 못한 롤링이 발생해 기체가 분해되었다. 네 번째(1972년 11월 23일)는 가장 멀리 날아갔으나 1단 분리 직전 엔진 화재로 폭발했다.

미신은 엔진 고장에 대비해 자동제어시스템 KORD를 설계했지만, 지상 시험 설비 없이 비행시험에 의존한 근본적 한계를 넘지 못했다. 네 차례 실패 끝에 1974년 그가 해임되자 N-1 계획도 폐기되었고, 소련의 유인 달탐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미신은 훗날 회고록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고 썼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