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스테파노비치 랴스노이

Василий Степанович Рясной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계 1904–1995 ○ 자연사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 진압을 지휘한 NKVD 내무인민위원

"7월 20일까지 자진 출두하면 사면한다. 이후의 모든 자는 조국의 배신자로서 체포·엄벌·섬멸될 것이다." — 1945년 5월, 우크라이나 내무인민위원으로서 UPA에 내린 최후통첩.

사마르칸트 출신으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콤소몰·당 경력을 쌓은 뒤 1937년 당 충원으로 NKVD에 들어갔다. 1943년부터 1946년까지 우크라이나 SSR 내무인민위원으로서 UPA와 민족주의 지하조직을 무력 진압하는 작전을 지휘했으며, 종전 후에는 대규모 사면 회유와 가족 추방을 병행하는 이중 전략을 폈다. 이후 소련 내무차관, 국가보안차관 겸 MGB 제2총국(방첩) 국장을 거쳐 1952년 후보 중앙위원이 되었으나, 1956년 '장교 명예를 실추시킨 행위'로 해임된 후 건설 부문에서 일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우크라이나 내무인민위원 시절(1943~1946): UPA·지하조직 진압

1943년 7월 29일 랴스노이는 우크라이나 SSR 내무인민위원에 임명되었다. 독소전쟁 당시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ОУН)과 그 무장 조직인 우크라이나 반란군(UPA)이 소련 권력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벌이던 전장이었다. 랴스노이의 임무는 재점령을 앞둔 이 지역에서 소비에트 행정과 치안 질서를 재수립하고, 민족주의 무장 지하조직을 진압하는 것이었다.

그의 대표적 수단은 이중 전략이었다. 한편으로는 투항을 회유하는 대규모 사면을 내걸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을 계속하는 자에게 가혹한 보복과 가족 추방을 예고했다. 1945년 5월 20일 그가 서명한 내무인민위원 명령은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명령은 1945년 7월 20일까지 자진 출두한 우크라이나-독일 민족주의자 무장조직의 가담자는 책임을 묻지 않고 사면하며, 이미 가족이 우크라이나 밖으로 추방된 자라도 출두하면 그 가족을 원래 주거지로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기한까지 출두하지 않은 자는 "소비에트 인민의 화해 불가능한 적이자 조국의 배신자"로 간주하여 체포·엄벌·섬멸하고 그 가족을 추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유예·사면 정책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어 수천 명의 무장 가담자와 징집 기피자가 투항했으나, 이면에서는 대규모 체포와 가족의 시베리아·중앙아시아 강제이주가 병행되었다. 랴스노이는 점령 지역에서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와 추방도 지휘했다. 이 시기 그가 보여준 강온 양면의 진압 방식은 종전 직후 소련의 서우크라이나 '소비에트화'가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1946년 1월 그는 소련 내무제1차관으로 승진·전출되어 우크라이나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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