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을 지킨 가톨릭 장군
1939년 1월, 로호는 네그린에게 전선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비센테 로호는 스페인 공화국에 충성한 직업군인으로, 군사 전문성과 가톨릭 신앙을 공화국의 방어에 결합한 인물이다. 그는 마드리드 방어를 조직하고 자라마, 과달라하라, 브루네테, 에브로 전투의 작전을 계획하며 인민군의 핵심 참모가 되었다. 1939년 프랑스에서 후퇴한 뒤 네그린의 귀환 명령을 거부하고 난민 병사들을 돌보는 길을 택했으며, 이후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1957년 귀국했을 때 프랑코 정권은 그를 군사반란 혐의로 기소했지만 형을 집행하지 않고 곧 사면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4톨레도 보병학교 졸업, 소위
- 1922–1932톨레도 보병학교 교관 및 교육 행정 담당
- 1936공화국군 참모부 근무, 중령 진급
- 1936–1937마드리드 방위군 참모장
- 1937–1939공화국군 중앙참모장, 인민군 확대와 주요 작전 지휘
- 1939프랑스 망명, 중장 진급, 귀환 명령 거부
- 1943–1956볼리비아 군사학교 교수
- 1957스페인 귀국, 군사반란 혐의로 기소 후 사면
관련 역사 사건
마드리드 방어와 군대의 조직
1936년 10월 비센테 로호는 호세 미아하 장군 휘하 마드리드 방위군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공화국 정부가 발렌시아로 옮긴 뒤 마드리드를 지키는 임무를 맡은 방위위원회와 함께, 그는 수도 방어 계획을 세우고 민병대를 조직해 전선을 더 규율 있게 유지하려 했다. 11월 마드리드 전투에서 반란군의 공세가 시작되었을 때 방어 체계는 이미 마련되어 있었고, 전투는 도시 함락 없이 교착 상태로 끝났다. 로호는 방어를 조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 성과를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리기보다 미아하의 지휘와 병사·민병대의 전투, 증원 병력의 투입을 함께 보아야 한다.
1937년 5월에는 중앙참모총장 겸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인민군의 확대와 작전 계획을 이끌었다. 브루네테 공세와 아라곤 방면 작전 등은 공화국군이 전선의 압박을 완화하려 한 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작전은 제한된 병참과 병력 등 제약 아래 수행되었으며, 전술적 진전이 전쟁의 흐름을 뒤집지는 못했다. 로호의 경력은 전문 군사참모가 공화국의 전쟁 수행을 조직한 역할뿐 아니라, 계획과 실행 사이의 간극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