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GAS라는 전국 실시간 네트워크로 계획경제를 관리하려 한 소련 사이버네틱스의 아버지
1964년 코시긴이 OGAS 비용을 묻자 글루시코프는 200억 루블과 3차 5개년 계획을 답했다. 경제학자들은 '개혁에는 결의문 인쇄용 종잇값밖에 안 들고 결과는 더 좋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코시긴은 시장 개혁을 택했고, 소련은 컴퓨터로 계획경제를 구할 기회를 잃었다.
소련 사이버네틱스의 아버지. 1962년 키예프 사이버네틱스 연구소를 창설하고, 실시간 컴퓨터 네트워크 OGAS로 전국 경제의 최적 계획을 구상했다. 당 관료들은 통제권 상실을 우려해 이를 저지했다.
경력 연표
- 1948로스토프 대학 졸업, 우랄 산림공과대학 교편
- 1951–1955물리수학 박사 (모스크바 대학) — 힐베르트 제5문제 연구
- 1956–1962우크라이나 과학아카데미 계산센터 소장 — MESM 실험실 계승
- 1962–1982사이버네틱스 연구소 창설 소장 겸 우크라이나 과학아카데미 부원장
- 1963–1982국가과학기술위 산하 전산기술·경제수학 도입 위원회 의장
- 1966–1982키예프 대학 이론사이버네틱스 학과장, 사이버네틱스 학부 공동 창설
- 1967–1982모스크바 물리기술연구소(MFTI) 키예프 분과 창설·지도
- 1971–1982소련 최고회의 대의원 (제8~10대)
관련 역사 사건
OGAS ― 소련판 인터넷의 비극
1962년 글루시코프는 OGAS(전국 자동화 정보처리 시스템)를 제안했다. 모스크바에 중앙 컴퓨터 센터를 두고, 주요 도시 200곳에 중간 센터, 전국 각지 2만 개 터미널이 전화선을 통해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3계층 네트워크였다. 최종 목표는 화폐 없는 경제로의 이행이었다. 글루시코프는 당시 종이 문서 기반 계획 체계를 그대로 두면 1980년까지 계획 관료 수가 40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70년 10월, 그는 정치국에 완전한 이행을 호소하며 '지금 하지 않으면 1970년대 후반 소련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무장관 바실리 가르부조프의 반대와 당 관료들의 저항으로 자금 지원이 거부되었다. 흥미롭게도 미국 정부는 OGAS가 소련에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다줄 전략적 위협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1971년 당 대회는 전국망 대신 지역 정보관리시스템만 승인했다.
МИР 시리즈 ― 소련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
글루시코프의 지도 아래 키예프 사이버네틱스 연구소는 1965년 세계 최초의 단일 사용자 전자계산기 중 하나인 МИР('공학 계산용 기계')를 개발했다. 이듬해 개량된 МИР-1은 1966년에 등장했는데, 이는 소련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로 평가받는다. МИР-1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120비트 마이크로프로그램 제어 방식, 하드웨어 수준에서 고급 언어에 가까운 연산을 직접 실행하는 구조, 그리고 사용자가 표준 수학 기호(적분 기호, 시그마 등)로 알고리즘을 기술할 수 있는 입력 언어 АЛМИР-65였다. 소형 책상 형태로 설계되어 연구실과 설계국에 직접 배치할 수 있었으며, 해석적 미분·적분까지 처리했다. 1968년 글루시코프 팀은 이 공로로 국가상을 받았다. 후속 기종 МИР-2(1969년)는 경량 펜 입력 벡터 그래픽 디스플레이를 갖추고 언어를 Аналитик으로 확장했으며, 프랑스는 이를 유럽 공동 개발하자고 제안했으나 소련은 거절했다. МИР-3(1974년)는 성능이 20배 향상되었다. 이 기계들은 서구의 개인용 컴퓨터 혁명보다 10년 이상 앞섰으나, OGAS처럼 충분한 생산·보급 지원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