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게오르기예비치 쿨리코프

Виктор Георгиевич Куликов
소련 러시아 1921–2013 ○ 자연사

12년간 바르샤바 조약군을 지휘한 최장수 총사령관

1941년 6월 중순, 폴란드 접경 블라디미르볼린스크의 하숙집 주인이 갓 임관한 쿨리코프 중위에게 말했다. "중위님, 저쪽에서 그러는데 22일에 전쟁이 시작된답니다."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전차장교로 대조국전쟁의 첫날부터 베를린까지 싸웠다. 1971년 참모총장 겸 국방제1차관에 올라 소련군의 현대화를 이끌었고, 1977년부터 1989년까지 바르샤바 조약 통합군 총사령관을 지내며 냉전 후기 동구권 군사 교리를 총괄했다. 1981년 폴란드 계엄령 위기 당시 소련 군사 개입을 반대해 역사의 분수령에 섰다. 소련 원수, 영웅 칭호레닌상을 받았으며, 퇴역 후 러시아 하원의원으로 베테랑 복지에 힘썼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80-1981년 폴란드 위기와 소련의 '비개입' 결정

1980년 여름 폴란드에서 솔리다르노시치(연대) 노동조합이 등장하자 소련 지도부는 동구권의 전략적 요충지인 폴란드의 이탈을 막기 위해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1977년부터 바르샤바 조약 통합군 총사령관을 맡고 있던 쿨리코프는 이 위기에서 크렘린의 최전선 집행자였다. 그는 1981년 한 해에만 폴란드 지도자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를 22차례나 만났다. "아내와 딸보다 그를 더 많이 봤다"라고 야루젤스키가 훗날 술회했을 정도였다. 쿨리코프는 동독 측 장성들에게 폴란드의 '가톨릭 병'과 '민족주의·논쟁벽'을 한탄하며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1981년 후반으로 접어들며 크렘린의 계산은 바뀌었다. 안드로포프는 12월 10일 정치국 회의에서 "우리는 폴란드에 군대를 투입할 생각이 없다. 설령 폴란드가 솔리다르노시치의 수중에 떨어진다 해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쿨리코프 자신도 동독 군 지도부와의 작별 대화에서 "연합군의 개입 없이 폴란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동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2월 8일 야루젤스키가 쿨리코프에게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했을 때, 모스크바의 답변은 단호한 거부였다. 12월 13일 야루젤스키는 폴란드 자체 군경력만으로 계엄령을 선포했고, 소련군은 국경을 넘지 않았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이후 형성된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제한주권론'이 처음으로 적용되지 않은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1997년 바르샤바 학술회의에서 러시아 측 참석자가 모스크바가 군사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자, 충격을 받은 야루젤스키는 휴식 시간에 쿨리코프에게 다가가 러시아어로 속삭였다.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소 — 미국인들이 보는 앞에서?" 쿨리코프는 말없이 옛 동지를 껴안고 양 볼에 입맞췄다고 한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