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유색인의 투표권을 요구하며 1790년 카프프랑세 근교에서 봉기했다가 거열형을 당한 생도맹그의 상인
1757년 무렵 생도맹그 동동의 자유 유색인 농장주 가문에서 태어나 보르도에서 금세공을 배웠고, 1775년 돌아와 카프프랑세에서 아프리카계 가운데 가장 부유한 커피 상인이 되었다. 1788년 파리에 가서 혁명에 가담했고, 쥘리앵 레몽과 함께 자유 유색인의 대표권과 투표권을 국민제헌의회에 요구하면서도 노예 소유자로서 노예제의 존속은 지지했다. 1790년 3월 제헌의회가 모호한 투표권 법을 통과시키자 10월 몰래 돌아왔고, 식민 당국이 시행을 거부하자 샤반과 함께 약 300명을 모아 봉기했다. 패해 스페인령으로 달아났다가 붙잡혀 넘겨졌고, 1791년 2월 6일 카프프랑세에서 거열형으로 처형되었다. 그의 처형은 뒤에 노예 반란군의 저항 명분으로 거론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775카프프랑세의 커피 상인
- 1789파리에서 자유 유색인의 권리를 요구
- 1790카프프랑세 근교 봉기 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