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중심의 이탈리아 국가 연합(신교황파)을 주창하고 1848~1849년 사르데냐 총리를 지낸 사제
1801년 토리노에서 태어나 토리노 대학에서 신학 박사가 되었고 1825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마치니의 영향도 받아 이탈리아의 해방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다. 카를로 알베르토의 궁정 사제가 되었으나 1833년 음모 혐의로 체포되어 넉 달 갇힌 뒤 재판 없이 추방되었고, 파리와 브뤼셀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저술했다. 1843년 『이탈리아인의 도덕적·시민적 우위』에서 교황을 수장으로 한 이탈리아 모든 나라의 연합을 제안해 이름을 얻었다. 1848년 4월 열광 속에 토리노로 돌아와 하원 의장이 되었고, 그해 말 총리로 내각을 이끌었다. 1849년 3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즉위한 뒤 밀려나 파리로 보내졌고, 1852년 그곳에서 뇌졸중으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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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1852
종교
- 1833–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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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
입법·국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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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1849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833체포·추방 (파리·브뤼셀 망명)
- 1843『이탈리아인의 도덕적·시민적 우위』 출간
- 1848사르데냐 하원 의장
- 1848–1849사르데냐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