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리 그리고리예비치 흘로핀

Виталий Григорьевич Хлоп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890–1950 ○ 사망

라듐연구소를 이끌며 소련 핵물리학의 제도적 토대를 놓은 방사화학자

1921년 12월 1일, 흘로핀은 페트로그라드의 실험실에서 소련 최초의 고활성 라듐 제제를 자신의 손으로 얻어냈다.

소련 방사화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1921년 최초의 국산 라듐을 얻어내고 1924년 미량성분 분배 법칙(흘로핀 법칙)을 정립했다. 베르나츠키의 뒤를 이어 라듐연구소장이 되었고, 1940년 6월 베르나츠키와 함께 우라늄 위원회 설립을 제안해 7월 30일 위원회가 발족하자 초대 위원장에 올랐다. 전후에는 라듐연구소에서 플루토늄 분리 기술을 개발해 1949년 첫 핵실험의 산업적 기반을 마련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사이클로트론과 전후 플루토늄 기술

흘로핀은 라듐연구소의 과학·행정 책임자로서 가속기 연구와 방사화학을 결합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1932년 게오르기 가모프와 물리부장 레프 미솝스키가 연구소에 1미터 사이클로트론을 세우자고 제안했으며, 블라디미르 베르나츠키와 흘로핀이 이를 지원했다. 흘로핀은 자금 확보와 레닌그라드 공장들과의 장비 제작 계약을 맡고, 미솝스키, 젊은 이고리 쿠르차토프, 베니아민 루카시니코프, 아브람 알리하노프 등이 참여하는 팀을 조직했다. 건설은 1933년 시작되어 1937년 가동에 들어갔다. 연구소는 이 가속기로 우라늄 조사와 핵분열 생성물 및 초우라늄 원소 연구를 진행했으며, 소량의 플루토늄도 얻었다.

전쟁 중 연구소가 카잔으로 옮겨간 뒤에도 흘로핀은 소장직을 유지했다. 1943년 연구소는 조사된 우라늄에서 플루토늄을 화학적으로 분리하는 기술을 개발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연구진은 이온교환, 용매추출, 침전법을 비교한 뒤 단순하고 저렴한 아세트산염-불화물 공정을 선택했다. 1946년 4월 기술 개발을 마쳤고, 이를 바탕으로 우랄의 공장 B가 건설되어 1949년 3월 1일 가동했다. 라듐연구소 인력은 같은 해 8월 소련의 첫 핵실험에도 참여했다. 이 작업은 흘로핀이 이끈 연구소의 방사화학 역량이 국가 핵사업의 산업적 공정으로 이어진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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