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당대회에서 《이스크라》의 강령과 조직론에 맞선 「경제주의」 대표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 본명은 블라디미르 마흐노베츠. 1890년대 인민주의 선전에 가담했다가 체포·유형을 당했고, 1898년 제네바로 탈출해 재외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 동맹의 《노동자의 대의》 편집자가 되었다. 1903년 2차 당대회에서 마르티노프와 함께 「경제주의」를 대표해 《이스크라》파에 맞섰고, 그 뒤 멘셰비키 우파에 섰다. 1905년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위원이었다.
다른 이름: 블라디미르 마흐노베츠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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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1903
이념·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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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
이념·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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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사회운동·조직
경력 연표
- 1897.03.21체포되어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 갇혔다.
- 1898.09유형지에서 탈출해 제네바로 갔다.
- 1903.072차 당대회에 재외 동맹 대의원으로 참석했다.
- 1905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위원.
- 19064차 당대회에서 무장봉기에 반대했다.
2차 당대회의 「경제주의자」
아키모프는 의사의 아들로 보로네시 실업학교를 마치고 페테르부르크 공업대학과 대학 법학부에서 공부했다. 1890년대 초 보로네시에서 인민주의 선전을 했고,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신(新)인민의 의지」 그룹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1897년 3월 체포되어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독방에 갇혔다가 1898년 4월 예니세이현으로 유배되었고, 그해 9월 탈출해 제네바로 갔다.
제네바에서 그는 재외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 동맹에 들어가 기관지 《노동자의 대의》 편집자가 되었고, 「경제주의」를 옹호하며 처음에는 노동해방단, 이어서 플레하노프와 레닌의 《이스크라》에 맞섰다. 레닌의 『전집』 인명 색인은 그를 「경제주의」의 대표적 인물이자 「가장 극단적인 기회주의자」 가운데 하나로 적었다.
1903년 2차 당대회에서 그는 마르티노프와 함께 재외 동맹을 대표한 반(反)《이스크라》파 대의원이었다. 대회가 재외 동맹을 당의 구성 조직으로 인정하지 않자 두 사람은 퇴장했다. 그 뒤 그의 분파는 마르토프의 멘셰비키와 손잡았고, 그는 멘셰비키 우파에 섰다. 1905년 혁명기에 그는 사회민주주의를 여러 사상 조류 가운데 하나로만 두는 「전러시아 노동계급 조직」을 주장했고, 1906년 4차 당대회에서는 무장봉기에 반대하며 두마 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을 지지하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