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세묘노비치 크루슈코프

Владимир Семёнович Кружк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5–1991 ○ 자연사

스탈린 전기를 공동 집필하고 즈다노프 노선을 집행한 후 성 스캔들로 몰락한 이념 관료

흐루쇼프가 '검투사 사건'에서 외친 말: "알렉산드로프는 젊으니 이해하겠다. 그런데 너는 그 나이에 거길 왜 갔느냐?" — 크루슈코프와 이념 관료들은 이 한 방에 모조리 직위에서 사라졌다.

소련의 철학자이자 당 이념 관료. 러시아 고전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으며,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장(1944~1949)으로서 스탈린의 공식 단평전(1947)을 공동 집필하고 마르크스주의 정전 편찬을 총괄했다. 중앙위원회 문학예술부장(1950~1953)과 선전선동부장(1953~1955)을 역임하며 후기 스탈린 시기 문화 통제와 즈다노프슈치나 노선의 집행자로 활동했다. 1955년 이른바 '검투사 사건'으로 불리는 성 스캔들에 연루되어 모든 당직에서 해임되었고, 우랄 지방으로 좌천된 후 학계로 복귀하여 소련 예술사연구소장(1961~1973)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철학 저술과 우랄에서의 학계 복귀

크루슈코프는 러시아 철학과 사회사상사, 미학을 연구하고 철학 교육과 저술을 병행했다. 1942년에는 드미트리 피사레프의 철학적·사회정치적 견해를 다룬 저서를, 1944년에는 고전 러시아 철학의 주요 특징을 논한 저서를 냈다. 1945년에는 벨린스키, 게르첸, 체르니솁스키, 도브롤류보프를 다룬 책을 출간했고, 피사레프와 미하일 안토노비치의 철학 저술 선집도 편집했다. 1950년 박사학위 논문을 방어하고 같은 해 니콜라이 도브롤류보프의 세계관에 관한 연구를 출간했다. 이 책으로 1952년 스탈린상을 받았다. 1955년 중앙당직에서 물러난 뒤 스베르들롭스크로 보내져 우랄국립대학교 교수로 1961년까지 재직했으며, 신문 『우랄 노동자』 편집도 맡았다. 이후 모스크바로 돌아와 1961년부터 1973년까지 소련 문화부 예술사연구소장을 지냈다. 이 경로는 그의 철학 연구와 편집 활동이 당의 이념 기관에서 대학 및 문화부 산하 연구소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