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로보프

Владимир Николаевич Лоб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35–

알마아타에 군대 투입을 거부하고 소련 군사개혁을 설계한 마지막 총참모장

“이것은 광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던 젊은이들이었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유혈 사태 없이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 1986년 알마아타 시위 진압을 위해 군대 투입을 요구한 카자흐 당 지도부의 명령을 거부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사병으로 입대하여 소련군 최고 직책인 총참모장까지 오른 직업군인. 중앙아시아 군관구 사령관 시절인 1986년 12월, 알마아타 시위 진압을 위해 병력을 출동시키라는 카자흐 당 지도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유혈 사태 없이 사태를 해결했다. 고르바초프의 지시로 군사개혁 초안을 두 차례 작성했으며, 복무 기간 단축·여단제 전환·방어적 군사 태세를 주장했으나 야조프 국방장관 및 이후 러시아 군 수뇌부와 충돌했다. 1991년 8월 쿠데타 이후 총참모장에 임명되었으나, 불과 4개월 뒤 소련 자체가 해체되면서 소련군 마지막 총참모장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군사개혁 구상과 총참모장 시기

1987년 1월 총참모부 제1부참모장으로 부임한 로보프는 고르바초프의 요청으로 군사개혁안을 마련했다. 초안은 징집 복무 기간을 2년에서 18개월로 줄이는 내용을 포함했다. 그러나 야조프 국방장관이 주요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고, 로보프는 1988년 11월 직책에서 물러났다. 1989년 1월 그는 총참모부 제1부참모장 겸 바르샤바조약기구 통합군 참모장이 되었으며, 조약기구 해체 뒤인 1991년 6월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원장으로 옮겼다.

1991년 8월 쿠데타 시도 이후 23일 총참모장에 임명되어 두 번째 군사개혁 구상을 작성했다. 10월부터 12월까지 소련 대통령 산하 국방위원회 위원도 맡았다. 12월 7일 총참모장직에서 해임되었고, 1992년 러시아 국방부 군사감찰관·고문으로 일한 뒤 러시아군 개혁안도 작성했다. 그 안은 국방부의 행정 기능을 줄이고 총참모부의 지휘 역할을 강화하며, 사단·연대 체계를 없애고 여단 중심으로 전환하고 징집 복무 기간을 줄이는 구상이었다. 러시아 국방부 지도부가 거의 모든 제안을 거부하자 그는 1993년 12월 예비역으로 편입되었고, 1994년 3월 퇴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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