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수호돌스키

Владимир Николаевич Суходольский
소련 러시아인 1907–1966 ○ 당 제명 · 계급 박탈 후 사망

툴라 방어전을 지휘하고 몰락한 NKVD 소장

1941년 가을, 서른넷의 수호돌스키는 자보론코프, 치무토프와 함께 툴라 시 방위위원회 3인에 올랐다. 전선의 붉은 군대가 철수한 텅 빈 도시에서, 그가 조직한 노동자 연대와 파르티잔 부대가 구데리안의 기갑군을 45일간 막아냈다.

소련 국가보안 기관에서 복무한 장교로, 1941년 독일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하던 결정적 시기에 툴라 주 NKVD 국장을 맡았다. 툴라 시 방위위원회 위원으로서 노동자 대대와 파르티잔 부대를 조직하고 시내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으며, 후방에서 압베어(Abwehr) 첩보망을 무력화했다. 전후 보로네시 주 MGB 국장과 불가리아 주재 소련 고문을 지냈다. 1950년 보로네시에서 발생한 청년 반스탈린 조직 'KPM' 사건을 처리한 책임으로 1957년 당에서 제명되고 소장 계급을 박탈당했으며, 사후에도 복권되지 못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KPM 사건과 몰락

1948년 가을부터 1949년 여름까지 보로네시에서는 '청년공산당'(KPM)이라는 지하 조직이 활동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약 60명으로 구성된 이 조직은 소련을 '레닌주의 원칙'으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스탈린과 그 측근들의 강제 축출 가능성을 비밀 강령에 포함했다. 훗날 시인 아나톨리 지굴린이 이 조직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1949년 9월부터 보로네시 주 MGB는 대대적인 검거에 나서 약 30명을 체포했다. 당시 보로네시 주 MGB 국장이던 수호돌스키는 이 사건의 총괄 책임자였다. 1950년 6월, MGB 특별회의는 지굴린에게 징역 10년형을 선고했고, 다른 구성원들도 중형을 받았다. 수호돌스키는 1951년 가을까지 보로네시 주 MGB 국장직을 유지하다 불가리아 주재 고문으로 발령났다.

1953년 스탈린 사후 해빙기가 도래하자 KPM 사건 처리는 문제가 되었다. 1956년 지굴린은 완전히 복권되었고, 수호돌스키는 같은 해 2월 질병을 이유로 KGB에서 예편했다. 이듬해 3월 23일 그는 당에서 제명되었고, 9월 3일 소련 각료회의 결정 제1068호에 따라 소장 계급을 박탈당했다. 사망 이후에도 복권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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