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되지 않았지만 혁명적 유토피아의 가장 지속적인 상징이 된 탑의 창조자
1920년 베를린 다다 전시회에서 게오르크 그로스와 욘 하트필드는 '예술은 죽었다 — 타틀린의 새 기계 예술 만세!'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섰다.
러시아 및 소비에트 화가, 건축가, 무대 디자이너로, 카지미르 말레비치와 함께 1920년대 소비에트 아방가르드의 양대 거장이었다. 1919-1920년에 설계한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타틀린의 탑)는 에펠탑보다 높은 400미터의 나선형 철골 구조물로, 코민테른의 본부로 구상되었으나 실현되지 못한 채 혁명적 건축의 상징으로 남았다. 1914년부터 선보인 '반(反)부조'는 목재와 금속 등 산업 재료로 제작된 3차원 구성물로, 구축주의의 선구적 작업이었다. 1930년대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득세하며 공식 후원을 잃었으나, 1960년대에 재평가되어 그의 탑은 혁명적 예술의 가장 널리 알려진 이미지로 남아 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1모스크바에서 성상 화가로 경력 시작
- 1913파리에서 피카소의 작업실 방문, 구호부조 제작 시작
- 1915마지막 미래파 전시 '0.10'에서 반(反)부조 전시
- 1919–1920제3인터내셔널 기념비(타틀린의 탑) 설계 및 모형 전시
- 1925–1927키예프 예술대학 교수
- 1927–1930모스크바 브후테마스 교수
- 1930–1932개인 비행 장치 '레타틀린' 제작
- 1948반공산주의적이라는 비판으로 해고, 그러나 숙청되지 않음
레타틀린: 조류 비행 연구와 인간 동력 비행기
1929년부터 1932년까지 타틀린은 새의 날개 구조와 비행을 연구해 인간의 힘으로 움직이는 날개 달린 비행기 레타틀린을 만들었다. 그는 새의 구조를 더 잘 이해하려고 연구자들을 모았고, 때로는 날개를 해부하기도 했다. 목재와 금속, 고래수염, 비단을 결합한 이 기체는 자연의 구조를 모방해 더 효율적인 비행을 구현하려는 시도였다. 레타틀린은 세 대가 제작되었으며, 3호기만 남았다. 3호기는 항공 관련 박물관들을 거쳐 모니노의 중앙 항공우주박물관에 보관되었다. 보존된 기체의 유일한 비행 시도는 실패했다. 돌풍에 날개가 부러져 실제 항공기로 쓰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