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비노그라도프

Владимир Михайлович Виноград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21–1997 ○ 자연사

1973년 전쟁과 이란 혁명을 내부에서 목격한 소련 중동 외교관

1979년 6월, 호메이니는 비노그라도프를 불러 직접 경고했다. "우리는 당신들이 아프가니스탄 무슬림들에게 가하는 일을 보고 있다. 소련은 이슬람에 적대적이다."

무역 외교에서 출발해 브레즈네프 시대 소련 중동 외교의 핵심 현장을 두루 거친 외교관이다. 주일 대사와 외무차관을 지낸 뒤, 1970년 이집트 대사로 부임하여 나세르 말기부터 사다트의 서방 전환기까지 카이로에 주재했고, 1973년 10월 전쟁 당시 소련의 대응을 현장에서 조율했다. 1977년 이란 대사로 테헤란에 도착한 지 2년 만에 팔레비 왕조의 붕괴와 이슬람 혁명을 목격했으며, 호메이니와의 긴장된 대면을 통해 혁명 정권과 소련의 복잡한 관계를 관리했다. 이후 러시아공화국 외무장관으로 8년간 재임하며 소련 외교의 제도적 연속성을 유지했고, 퇴임 후에도 중동 평화정착을 위한 비공식 채널을 이끌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사다트의 이집트 전환과 1973년 전쟁

카이로 주재 소련 대사 비노그라도프는 이집트의 노선 변화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관리해야 했다. 소련 공관의 젊은 외교관들은 사다트가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미국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보았지만, 공관 내 다른 견해는 기존 관계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했다. 회고에 따르면 비노그라도프는 젊은 외교관 바클라노프를 불러 그의 분석이 맞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공관의 임무는 그 전망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소련 외교관들 사이에서 이집트가 미국 쪽으로 이동한다는 판단이 점차 받아들여졌다. 1972년 소련 군사고문단 철수 뒤에도 이집트는 소련 무기에 의존했고, 모스크바는 시리아에 대한 공급도 계속했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군이 이스라엘군을 공격하자 소련은 전쟁이 시작된 뒤에야 공식적으로 알게 됐다. 1969–1972년 이집트 주재 소련 공관에서 통역·아타셰로 근무한 바클라노프의 회고에 따르면, 사다트는 수에즈 운하 동쪽 강변에 이집트군이 도달한 뒤 비노그라도프에게 전화했으나 대사 대신 비노그라도프의 서기관 바푸 굴루자데와 통화했다. 이 회고는 외교적 사전 통보 없이 전쟁이 시작된 상황을 전한다. 그럼에도 소련은 이집트에 무기를 수송했고, 공관의 군사 연락망은 영국제 센추리온 전차와 미국제 M48 전차, 무인기 등 서방 무기와 장비를 연구용으로 확보했다. 전후 비노그라도프는 1974년 제네바에서 시작된 아랍-이스라엘 협상 과정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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