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트 예두아르도비치 보스

Augusts Voss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라트비아 1916–1994 ↓ 퇴임 1989

라트비아 당 지도자 출신 민족소비에트 의장

1988년 5월 28일, 라트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19차 전연방 당대회 대표 선출이 진행되었다. 보스는 가장 많은 반대표를 받았지만 어쨌든 당선되었다. 모스크바로 항의 편지가 쇄도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라트비아인 부모를 둔 시베리아 출신으로, 1959년 '민족주의자' 숙청 이후 라트비아 공산당을 이어받아 18년간 제1서기를 지낸 '인테르나치오날리즘'의 집행자였다. 모국어를 완벽히 구사하면서도 공개 석상에서 단 한 번도 라트비아어로 말하지 않았던 이 모순이 그의 시대를 상징했다. 말년에는 민족소비에트 의장으로 올랐지만, 페레스트로이카의 민족운동 속에서 구질서와 함께 밀려났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라트비아 사단의 정치지도원

보스는 1940년 붉은 군대에 입대해 연대 학교와 모스크바 정치일꾼 과정을 마쳤다. 전쟁이 터지자 중위 계급으로 모스크바 방공구역 대공포대에서 복무했고, 1942년 6월부터는 201 라트비아 소총병사단 포병대대 정치위원으로 레닌그라드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 사단은 전쟁 중 첫 번째 민족별 편성 부대로, 대원의 약 90%가 라트비아 시민이었고 70%가 지원병이었다. 보스는 두 차례 부상과 포탄 충격을 입었고, 1943년 1월 스타라야 루사 근처에서 중상을 입어 후송된 끝에 그해 7월 전역 판정을 받았다. 사단은 1942년 10월 모스크바 방어와 스타라야 루사 전투의 공로로 근위대 칭호를 받아 제43근위 라트비아 소총병사단으로 개칭되었다. 시베리아 라트비아인 이주민의 아들에서 전상 제대한 전쟁 영웅으로, 보스의 이 궤적은 전후 라트비아 공산당 내에서 그가 누린 당연한 권위의 밑바탕이었다.

라트비아어를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은 라트비아 지도자

라트비아인 부모 사이에서 시베리아 마을에서 태어난 보스는 모국어 라트비아어에 능통했다. 그럼에도 1966년부터 1984년까지 18년간 라트비아 공산당 제1서기로 재임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공식 석상에서 라트비아어로 연설하지 않았다. 이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동시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라트비아어를 "매우 잘" 구사했다. 의식적인 정치적 선택이었다. 브레즈네프식 '인테르나치오날리즘' 원칙에 충실했던 보스에게, 공개적인 라트비아어 사용은 '민족주의적 편향'으로 비칠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의 후임 보리스 푸고는 공개적으로 라트비아어를 쓰려 애썼으나 유창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민족 간부를 키우면서도 정작 자신의 뿌리를 공개적으로 부정해야 했던 이 모순은 소비에트 민족정책의 근본적 역설을 그대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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