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월, 레닌이 올가 라비치에게 격앙된 편지를 쓰자 카르핀스키는 "이건 욕설입니다"라고 직언했다. 레닌은 후일 이네사 아르만트에게 "카르핀스키가 내 편지를 욕설이라고 하더군. 사과 편지를 써야겠어"라고 털어놓았다.
1898년 입당한 최고참 볼셰비키로, 제네바 망명 시절 레닌 직속에서 당 기관지를 편집했다. 혁명 후 《베드노타》 편집장과 전러시아중앙집행위원회 선전부장으로 농민·대중 선전의 제도적 틀을 세웠다.
경력 연표
- 1896–1898펜자에서 중등학생 마르크스주의 서클 조직, 선전 활동
- 1898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입당 (17세)
- 1899–1902하리코프대학 의학부에서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 조직, 체포·유형
- 1904–1917제네바 망명, 레닌 지도 아래 《전진》·《프롤레타리》·《사회민주주의자》 편집
- 1917–1918귀국, 《농촌의 진리》 편집, 전러시아중앙집행위원회 선전교도부장
- 1918–1922《베드노타》 편집장, 선전선 '붉은 별' 호에서 신문 발행
- 1918–1927《프라우다》 편집위원, 전러시아중앙집행위원회 1~7기 위원
- 1936–1937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기구에서 근무
- 1937–1965학술·문필 활동 전념, 레닌·당사 연구, 경제학 박사, 사회주의노동영웅(1962)
관련 역사 사건
레닌과의 제네바 망명 시절
1904년 볼로그다 유형지에서 탈출한 카르핀스키는 제네바로 망명하여 레닌의 직접 지도 아래 볼셰비키 출판 활동의 핵심 실무자가 되었다. 그는 《전진》(Вперёд), 《프롤레타리》(Пролетарий),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사회민주주의자》(Социал-демократ)의 발행을 조직하고 편집했다. 레닌은 그에게 100통이 넘는 편지를 썼으며, 카르핀스키는 망명지와 러시아 국내 조직을 연결하는 회색 인편망과 비밀 우편 경로를 관리했다.
제네바에서 카르핀스키는 첫 부인 사라 라비치와 함께 G. A. 쿠클린의 이름을 딴 당 도서관을 운영하며 볼셰비키 이론 작업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는 레닌에게 단순한 편집자가 아니라 신뢰받는 정치적 대화 상대였으며, 1917년 1월에는 레닌의 격앙된 편지 초고를 읽고 "이건 욕설입니다"라고 직언할 정도로 솔직한 관계였다. 레닌은 훗날 이네사 아르만트에게 "카르핀스키가 내 편지를 욕설이라고 하더군. 사과 편지를 써야겠어"라고 털어놓으며 그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카르핀스키는 스위스에서 《사회민주주의자》 신문을 창간·발행하는 실무를 도맡아, 전쟁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패배주의 노선을 천명하는 레닌의 기조를 유럽 사회주의 운동에 전파하는 물리적 통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