뱌체슬라프 이바노비치 코체마소프

Вячеслав Иванович Кочемас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18–1998 ○ 자연사

동독 해체를 지켜본 마지막 소련 대사

1989년 11월 9일 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코체마소프는 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에게 전화 지시를 구했으나 둘 다 연결되지 않았다. 그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소련의 정치인·외교관으로, 1962년부터 21년간 러시아공화국 각료회의 부의장을 지내며 문화·사회 정책을 총괄했고, 전러시아 역사문화기념물보호협회 중앙위원회 의장(1966~1983)으로서 문화유산 보존 운동을 이끌었다. 1983년 동독 주재 소련 대사로 임명되어 1990년까지 냉전 최전선인 동베를린에서 근무했으며,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모스크바의 지시를 받지 못한 채 현장을 지켰다. 1990년 4월 동독의 로타어 드 메지에르 총리에게 독일 통일에 관한 소련의 11개 조건을 담은 비공식 문건을 전달하며 통일 과정에서 소련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고리키 콤소몰에서 청년 반파시즘 외교로

코체마소프의 경력은 문화·사회 정책 총괄보다 앞서 청년 조직과 대외 청년 교류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1941년 고리키 수운공학원을 졸업하고(졸업논문 심사 없이) 같은 해부터 1942년까지 그 학교 콤소몰 위원회 서기를 지냈으며, 1942~1943년에는 고리키 스베르들롭스키구 콤소몰 제1서기, 1943~1946년에는 고리키 주 콤소몰 위원회 서기·제2서기를 거쳐 1946~1948년 동 위원회 제1서기가 되었다. 1942년에는 당원이 되었다.

그의 이 시기 활동에서 가장 특징적인 대목은 청년 반파시즘 외교다. 그는 1948~1949년 소련청년반파시스트위원회 부의장을 거쳐 1949~1954년 그 위원회 의장을 맡았고, 동시에 1949~1955년에는 콤소몰 중앙위원회 서기를 겸했다. 이 위원회는 1941년에 만들어져 1956년 소련청년단체위원회로 개편된 기구로, 콤소몰과 달리 공산주의 이념의 직접적 선전보다 국제 청년 교류를 담당했으며, 두 기구 모두 국가보안 기관 출신 간부가 두텁게 배치되어 있었다.

이 경력은 그를 동독 문제로 이끌었다. 1955~1958년 그는 주동독 소련대사관 참사관, 1958~1960년에는 공사참사관으로 근무하며 이후 그의 주요 무대가 될 동독을 처음으로 현장에서 경험했다. 1960~1961년 소련 외무부 부국장을 거쳐 1961년부터 대외문화교류 국가위원회에서 부의장·제1부의장을 맡았고, 1962년 러시아공화국 각료회의 부의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21년에 걸친 문화·사회 정책 시기에 들어섰다. 고리키의 지역 콤소몰 간부에서 청년 교류와 문화 외교를 거쳐 공화국 정부 부의장으로 이어지는 이 경로는, 그가 외교 현장에 1983년 처음 투입된 것이 아니라 청년 국제 교류와 동독 사무에서 이미 오랜 실무를 쌓은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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