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디트만

Wilhelm Dittmann

독립사회민주당 창당 지도자이자 1918년 인민대표평의회 위원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목공 출신으로 1894년 사회민주당에 들어갔고, 1912년 제국의회 의원이 되었다. 1915년 전쟁공채에 반대해 원내단에서 쫓겨났고, 1917년 독립사회민주당 창당에 참여해 1922년까지 중앙위원을 지냈다. 1918년 11~12월 혁명정부인 인민대표평의회 위원이었다. 1920년 코민테른 2차 대회에 참석했으나 가입에 반대했고, 1922년 사회민주당 재통합을 이끌었다. 1933년 망명했다가 1951년 돌아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독립사회민주당과 인민대표평의회

디트만은 처음에는 전쟁공채에 찬성했지만,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다고 보고 1915년 12월 21일 반대표를 던졌다. 이 때문에 1916년 3월 사회민주당 원내단에서 쫓겨나자 그는 후고 하제, 게오르크 레데부어와 함께 사회민주주의 노동공동체를 만들었고, 1917년 4월 독립사회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1918년 2월에는 베를린 군수 노동자 파업에 관여한 일로 군사법원에서 반역 미수 혐의로 5년형을 받았으나, 정부가 휴전을 모색하던 10월 15일 풀려났다.

1918년 11월 10일 혁명정부로 세워진 6인의 인민대표평의회에서 그는 독립사회민주당 몫의 위원으로 교통과 귀환 병사의 동원 해제를 맡았다. 12월 성탄절 위기 때 에베르트가 혁명 수병들을 군대로 진압하자, 그는 다른 독립사회민주당 위원들과 함께 12월 29일 사임했다.

1920년 그는 독립사회민주당 대표로 코민테른 2차 대회에 참석했으나, 코민테른 가입과 공산당과의 통합에 반대했다. 할레 당대회에서 다수가 가입을 결의하자 그는 남은 독립사회민주당을 이끌고 1922년 사회민주당과의 재통합을 이루었다. 이후 사회민주당 집행위원회 서기와 원내단 의장을 맡았고, 1926년 제국의회 조사위원회에서 「등 뒤에서 찔렀다」는 신화를 반박하는 여섯 시간짜리 연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