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타 합의의 치명적 모호함을 루스벨트에게 직고한 원수급 비서실장
리히가 루스벨트에게 말했다. '이 합의는 소련이 얄타에서 워싱턴까지 늘여도 기술적으로 위반이 아닙니다.' 루스벨트가 답했다. '나도 아네, 빌.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윌리엄 리히는 미 해군 원수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루스벨트와 트루먼 두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사실상의 첫 합동참모의장이었다. 해군작전부장과 푸에르토리코 총독, 비시 프랑스 대사를 지낸 뒤 1942년 현역으로 복귀해 전쟁 내내 연합국 전략을 조율했다. 1945년 얄타 회담에서 그는 폴란드 합의문을 읽고 루스벨트에게 '소련이 얄타에서 워싱턴까지 늘여도 기술적으로 위반이 아닙니다'라고 말했고, 루스벨트는 '나도 아네, 빌.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라고 답했다. 원자폭탄 투하를 훗날 비판했지만 당시 공개 반대는 하지 않았고, 전후에는 핵 선제사용 전쟁계획을 거부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75아이오와주 햄프턴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아들로 출생
- 1897해군사관학교 졸업, USS 오리건에서 스페인-미국 전쟁 참전
- 1927–1931해군 병기국장, 동기생 중 첫 제독 진급
- 1937–1939해군작전부장, 함대 확장과 전쟁 준비 주도
- 1939–1940푸에르토리코 총독, 기지 건설과 뉴딜 공공사업 집행
- 1940–1942비시 프랑스 주재 대사, 페탱 정권의 대독 협력 억제 실패
- 1942–1949대통령 비서실장 겸 합동참모의장, 얄타·포츠담 회담 배석
- 1950회고록 『나는 거기에 있었다』 출간
관련 역사 사건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전후 비판과 1945년의 기록
전후 리히는 1950년 회고록 『나는 그곳에 있었다』에서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사용한 것은 대일전쟁에 군사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윤리적으로도 야만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이 이미 패배해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며, 여성과 아이들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썼다. 이 발언은 원폭 사용에 대한 그의 공개적 전후 입장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쟁 중 그가 같은 반대 의견을 대통령이나 정부 관계자에게 표명했는지는 구별해야 한다. 역사가 바튼 번스타인은 리히의 전시 일기 등 당시 기록에서 그가 투하 전에 트루먼이나 다른 정부 동료에게 그런 견해를 전달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회고록의 강한 비판을 1945년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공개적인 반대와 동일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