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대철강파업 지도자에서 미국 공산당의 최장기 지도자로
“노동자의 이익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정당은 혁명적 정당뿐이다.” — 『노동자 생활의 페이지들』(1939)
1919년 대철강파업을 지휘한 노동운동 전략가에서 CPUSA 최장기 지도자로 전환했다. 1944년 브라우더의 당 해산에 맞서 당을 재건했고, 『미국 공산당사』 등 마르크스주의 역사서를 남겼다.
경력 연표
- 1901미국 사회당 입당
- 1909IWW 가입, 스포케인 언론자유 투쟁 참가
- 1912북미신디칼리스트연맹(SLNA) 창립
- 1917–1918시카고 도축산업 노동자 조직화 — 8시간 노동제 중재
- 1919대철강파업 지휘 — 25만 노동자 동원
- 1920노동조합교육연맹(TUEL) 창립
- 1921코민테른 제3차 대회 참석 후 공산당 입당
- 1924첫 대선 출마 — 공산당 후보
- 1929CPUSA 의장 취임, TUUL 창설
- 1935코민테른 집행위원회 간부회원 선출
- 1944–1945브라우더 당 해산 반대 — CPUSA 재건, 서기장
- 1948스미스법 기소 — 건강 악화로 재판 연기
- 1957CPUSA 명예의장 은퇴
- 1961모스크바 사망 — 붉은광장 국장
1919년 대철강파업
1919년 9월 22일, 25만 명의 철강 노동자가 전국 10개 주요 철강 생산지에서 파업에 돌입했다. 당대 미국 노동사상 최대 규모의 산업 파업이었다. 이 파업을 설계하고 지휘한 사람은 38세의 AFL 조직책 윌리엄 Z. 포스터였다. 그는 시카고 도축산업 조직화(1917~1918)에서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한 전략을 철강 산업에 확장 적용했다. 즉, 다수의 직종별 노조를 단일한 전국위원회(제철노동자조직화전국위원회)로 묶고, 이민자·미숙련공을 포함한 전면적 조직화를 추진하는 방식이었다. 미국노동총연맹(AFL)은 미온적이었고 자금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포스터는 시카고와 게리, 인디애나하버, 모논가헬라 계곡까지 조직망을 확장하며 35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를 가입시켰다. 철강사들이 협상을 거부하자 파업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진압은 신속하고 잔혹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앨러게니 카운티는 3인 이상의 공중집회를 금지하고 5천 명의 자경단을 무장시켰다. 파업 10일 만에 14명이 사망했고, 모두 파업 노동자 혹은 그 지지자였다. 포스터 자신도 40명의 자경대원에게 총구를 겨누인 채 펜실베이니아주 존스타운에서 추방당했다. 상원 노동교육위원회는 포스터를 소환해 그의 급진적 전력과 『생디칼리슴』(1912) 팸플릿을 문제 삼았고, 「비미국적 교리를 품은 자들을 노동운동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1920년 1월 8일 파업은 패배로 끝났다. 포스터는 이 경험을 통해 AFL의 틀 안에서의 변혁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절감했고,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프로핀테른 회의에 참석한 후 미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대철강파업은 진압되었지만, 포스터를 미국 급진 노동운동의 전국적 얼굴로 만들었고, 그를 노동조합 전략가에서 혁명가로 전환시킨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브라우더주의 투쟁과 CPUSA 재건 (1944–1945)
1944년, CPUSA 서기장 얼 브라우더는 미국-소련 전시 동맹을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간 계급투쟁의 종말로 해석했다. 그는 CPUSA를 해산하고 '공산주의정치협회'(CPA)를 창설했으며, 이를 뉴딜 연합 내의 마르크스주의 압력 단체로 규정했다. 다수의 당원이 이에 동조했지만, 포스터는 조용히 반대를 준비했다. 1945년 1월, 전후 긴장이 고조하자 그는 미국 공산당 간부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작성해 브라우더의 수정주의를 비판했다. 이 서한은 프랑스 공산당 지도자 자크 뒤클로의 유명한 논문 「미국 공산당의 해체에 관하여」에 영향을 주었고, 뒤클로는 브라우더의 노선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근본적 배반이라고 단죄했다. 브라우더를 '계급 배신자'로 규정하는 여론이 급속히 형성되었고, 1945년 7월 CPA 긴급 전당대회에서 CPUSA가 재건되었다. 브라우더는 축출되었고 포스터, 유진 데니스, 존 윌리엄슨으로 구성된 새 지도부가 선출되었다. 포스터는 1957년까지 서기장을 맡으며 냉전기 탄압 속에서도 당의 조직적 연속성을 지켰다. 이 일화는 그가 노동조합 전략가에서 공산주의 원칙의 최종 수호자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주요 저작과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포스터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역사가로서 미국과 세계 노동운동사를 집대성한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대표작 『미국 공산당사』(1952)는 19세기 마르크스주의 전통부터 CPUSA 창건과 발전까지를 당사자적 시각에서 정리한 기념비적 저술이다. 『아메리카 정치사 개설』(1951)은 신대륙 전체를 제국주의 약탈과 민중 저항의 연속으로 파악한 마르크스주의 통사의 선구적 시도였다. 『흑인민중의 미국사』(1954)는 노예제부터 20세기 민권 투쟁까지 미국 흑인사를 계급적·인종적 억압과 해방 투쟁의 변증법으로 재구성했으며, CPUSA 내 인종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토대를 닦았다. 『세계 자본주의의 황혼』(1949)은 전후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분석했고, 『세 개의 인터내셔널의 역사』(1955)와 『세계 노동조합운동 개설』(1956)은 국제 노동운동사 연구의 표준적 참고문헌으로 자리잡았다. 자서전 『노동자의 삶에서』(1939)는 20세기 초 미국 급진 노동운동의 가장 생생한 1차 문헌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포스터의 저작들은 공식적인 학계 바깥에서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사와 노동사를 아래로부터 읽는 마르크스주의 역사 서술의 주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