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약진의 「좌왕」으로 불린 허난 성위원회 제1서기, 신양 사건의 지도 책임자
허난 치현의 농민 집안 출신으로 1925년 공산당에 들어가 광저우 농민운동강습소를 거쳐 허난 동부의 농민 봉기를 이끌었다. 항일전쟁기 허난·안후이·장쑤 접경의 유격대와 신4군 제4사단 정치부 주임으로 싸웠고, 내전기 위완쑤 변구의 당 서기를 지냈다. 건국 뒤 허난성 주석·성장을 거쳐 성위원회 제1서기가 되었다. 대약진기 「약진의 철학」을 내세운 「좌왕」으로, 1958년 실제 281억 근이던 성의 곡물 생산을 702억 근으로 내세우고 루산 회의 뒤 「작은 펑더화이」를 잡아내라고 지시해 신양 사건의 바탕을 만들었다. 세 차례 자기비판으로 신양에서 100만 명 넘게 죽었음을 인정했고, 1962년 중난국으로 옮겨졌다. 1967년 광저우에서 숨졌다.
다른 이름: 오지포
주요 활동과 소속
-
1925–1967
중국공산당대표
정치·당 지도- 허난성 당위원회 제1서기1952–1962
-
1938–1949
중국공산당 혁명군(1949년 이전)신4군 제4사단 정치부 주임
군사·지휘 -
1949–1962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허난성 성장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925중국공산당 입당
- 1926광저우 농민운동강습소
- 1941신4군 제4사단 정치부 주임
- 1949중원임시인민정부 부주석, 허난성 부주석·주석
- 1958허난성 당위원회 제1서기, 「약진의 철학」
- 1959루산 뒤 허난의 반우경 운동 지휘
- 1961신양 사건 등에 대해 세 차례 자기비판
- 1962허난에서 해임, 중난국 문교 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