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프 길랴리예비치 에틴게르

Яков Гиляриевич Этингер
소비에트 유대계 러시아인 1887–1951 ✕ 고문사

스탈린의 '의사 사건' 첫 희생자가 된 크렘린 심장병 전문의

수감 중 스물아홉 차례 심장 발작이 일었고, 그중 열 번은 류민의 사무실에서 심문 도중에 찾아왔다.

벨라루스 민스크의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의학을 공부한 소비에트 심장병학자. 크렘린 진료국의 오랜 컨설턴트로 키로프, 오르조니키제, 디미트로프, 톨랴티 등 소련과 국제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치료했으며, 심전도 진단법의 선구자로 1950년 노벨상 후보로도 거론되었다. 1950년 11월 '의사 사건'의 첫 체포자가 되어 류민의 고문 속에 1951년 3월 레포르토보 감옥에서 사망했고, 류민은 그의 죽음을 아바쿠모프 탄핵의 지렛대로 이용해 사건을 전면화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심전도 진단과 임상 연구

에틴게르는 심전도를 이용해 급성 심근경색과 관상동맥 혈전증을 진단하는 연구를 개척했다. 1929년에는 소비에트 의학 문헌에서 심근경색의 심전도 진단을 다룬 첫 논문을 발표하고, 살아 있는 환자에게서 급성 관상동맥 혈전증을 진단한 사례를 기술했다. 1930년대에는 심근경색의 급성기와 심근염에서 나타나는 심전도 변화를 연구했으며, 심실복합체 말단부의 변화가 소초점 심근경색이나 재발 심장발작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동료 베니아민 네즐린과 함께 류머티즘성 심장질환의 심전도 양상을 연구했고, 1932년부터 1937년 사이 방해를 동반한 해리 현상도 기술했다.

에틴게르는 류머티즘열과 심장 결함의 진단·경과, 류머티즘성 복막염의 임상 양상도 연구했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야우자 시립병원 치료부를 맡았고, 1932년 제2모스크바의학원 소아과대학 내과 주임이 되었다. 1935년 교수 칭호를 받고 1937년 의학박사 학위를 얻었으며, 1941년부터 1949년까지 같은 학부의 치료학 강좌를 이끌었다. 2015년 의학사 연구자들은 그의 심전도 진단 연구와 임상 저술을 당시 소비에트 심장학의 선구적 성과로 평가하며, 그를 1940년대 모스크바의 주요 심장병 전문 임상의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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