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의사 사건' 첫 희생자가 된 크렘린 심장병 전문의
수감 중 스물아홉 차례 심장 발작이 일었고, 그중 열 번은 류민의 사무실에서 심문 도중에 찾아왔다.
벨라루스 민스크의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의학을 공부한 소비에트 심장병학자. 크렘린 진료국의 오랜 컨설턴트로 키로프, 오르조니키제, 디미트로프, 톨랴티 등 소련과 국제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치료했으며, 심전도 진단법의 선구자로 1950년 노벨상 후보로도 거론되었다. 1950년 11월 '의사 사건'의 첫 체포자가 되어 류민의 고문 속에 1951년 3월 레포르토보 감옥에서 사망했고, 류민은 그의 죽음을 아바쿠모프 탄핵의 지렛대로 이용해 사건을 전면화했다.
경력 연표
- 1913베를린대학교 의학박사
- 1914–1917제정 러시아군 야전병원 군의관
- 1918–1920붉은군대 대형 군병원장
- 1922–1932제1모스크바대학교 의학부 내과 조교·사강사
- 1929–1950크렘린 진료국 컨설턴트
- 1932–1949제2모스크바의학원 소아과대학 내과 주임
- 1950–1951MGB에 체포되어 레포르토보 감옥에서 고문 중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