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프 모이세예비치 피시만

Яков Моисеевич Фишман
좌파 사회혁명당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887–1961 ○ 사망

좌파 사회혁명당 지도자에서 소련 화학전의 설계자가 된 혁명가

1918년 7월, 좌파 사회혁명당 중앙위원 피시만은 독일 대사 미르바흐 암살에 사용될 폭탄 두 개를 직접 제조해 동지들에게 건넸다.

에스에르 전투원이었던 피시만은 시베리아 유형에서 탈출해 이탈리아 나폴리대학에서 폭발물·독가스 화학을 전공했고, 1917년 귀국 후 좌파 사회혁명당 중앙위원으로 1918년 미르바흐 암살의 폭탄을 직접 제조했다. 1920년 볼셰비키에 합류한 후 1925년 적군 군사화학국(VOKhIMU) 초대 국장으로 임명되어 소련 화학·생물학 무기 프로그램의 기초를 설계했고, 1928년 보고서에서 세균전의 공세적 운용을 주장했다. 1937년 체포되어 10년형을 받았으나 NKVD 특별기술국에서 방독면 신형을 개발했고, 1955년 복권되어 기술병 소장 계급을 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군사화학국과 세균전 연구의 조직

1925년 적군 군사화학국이 창설되자 피시만이 초대 국장을 맡았다. 그는 모스크바에 소규모 세균전 연구소를 설치하고 니콜라이 긴즈부르크에게 운영을 맡겼다. 1928년 피시만은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군사·해군 인민위원에게 네 부분으로 된 진행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긴즈부르크 연구진의 작업, 세균을 포탄과 폭탄에 실어 전쟁이나 사보타주에 사용하는 방안, 군사생물학 조직안, 생물학적 공격에 대한 방어 계획을 다뤘다. 같은 해 혁명군사평의회는 공세적·방어적 세균전 프로그램을 모두 수립하고 군사화학국이 관장하도록 하는 비밀 결정을 내렸다. 다만 그 결정이 현장에서 어떻게 시행되었는지는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다.

피시만의 보고를 통해 알려진 긴즈부르크 연구진의 작업에는 탄저균 포자의 성질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포함됐다. 연구진은 화학물질이나 방사선으로 병원체에 변이를 일으키고, 감염력·독성·생존성이 높아진 변종을 골라 증식하는 방식을 검토했다. 동물을 이용한 실험과 에어로졸 및 폭발물에 의한 살포 방법도 보고됐다. 이 연구는 콜레라균과 페스트균의 군사적 이용 가능성을 조사하는 단계로 확대됐다. 피시만은 군사 프로그램의 행정적 기반을 세웠을 뿐 아니라, 화학무기 공격에 대비한 민방위 활동도 조직했다. 그는 오소아비아힘의 설립과 활동을 도와 시민 대상 오염 회피 훈련과 제독 절차 교육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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