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화 행정을 맡은 농업인민위원
1929년 12월, 야코블레프는 전체 농지의 '최소 3분의 1'을 1930년 봄까지 집단화하자고 제안했다. 스탈린은 지나치게 신중하다며 기각했고, 야코블레프는 그대로 물러서 상향된 강행 일정을 충실히 집행했다.
본명 예프스타인. 1913년 볼셰비키 입당, 혁명 후 우크라이나에서 당 활동을 이끌었다. 1923년부터 『농민신문』 편집장을 맡아 농촌 문제 전문가로 부상했고, 1929년 초대 소련 농업인민위원에 임명되어 정치국 집단화 위원회를 주도했다. 1930년 1월 5일 포고령을 기초해 주요 곡창지대의 강제 집단화 일정과 '부농 계급 청산' 정책을 설계했으며, 트로핌 리센코를 발탁해 소련 생물학의 반과학적 전환에도 관여했다. 대숙청 중 체포되어 1938년 처형되었다.
경력 연표
- 1929–1934농업인민위원 · 집단화 행정
관련 역사 사건
집단화의 설계자: 정치국 위원회와 1930년 1월 5일 포고령
1929년 12월 8일, 야코블레프는 신설된 소련 농업인민위원부(Наркомзем СССР)의 초대 인민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전연방 농업집단체평의회(콜호즈첸트르) 의장도 겸임했다. 스탈린은 그에게 강제 집단화의 설계와 실행을 맡겼다. 야코블레프가 이끈 정치국 집단화 위원회는 1930년 1월 5일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의 역사적 결정 「집단화의 속도와 집단농장 건설에 대한 국가 지원 방안에 관하여」를 초안했다. 이 포고령은 주요 곡창지대(볼가 하류·중류, 북캅카스)의 집단화를 1930년 가을 또는 늦어도 1931년 봄까지, 그 외 곡창지대는 1932년 봄까지 완료한다는 강행 일정을 확정했다. 동시에 '부농(쿨라크)을 계급으로서 청산'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야코블레프는 처음에 전체 농지의 '최소 3분의 1'을 1930년 봄까지 집단화하자고 제안했으나, 스탈린은 이를 지나치게 신중하다고 일축했다. 이후 수개월간 당 간부들은 경쟁적으로 집단화 실적을 부풀렸고, 수백만 농민이 쿨라크로 낙인찍혀 추방·처형되었으며, 이는 1932-33년 대기근(홀로도모르)의 직접적 배경이 되었다. 야코블레프는 1934년 4월까지 농업인민위원직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