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코즐롭스키

Евген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Козловский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 벨라루스 1929–2022 ○ 자연사

소련 지질학 '황금기'를 이끈 최장수 지질장관

다른 사람들은 자식을 대사관에 두는데, 왜 아들을 알단으로 보냈냐는 질문에 — 「7년 후에 그 현장 학교를 거친, 진짜 지질학자가 되게 하려는 겁니다.」

예브게니 코즐롭스키는 소련 지질학의 '황금기'를 이끈 최장수 지질장관(1975–1989)으로, 재임 기간 소련의 광물자원 기반을 두 배로 확장하고 서시베리아·카스피·중앙아시아에서 대규모 유전과 가스전 개발을 주도했다. 달동 출신으로 부시추조수에서 출발해 극동 솔네치노예 주석광산의 조기 탐사를 성공시켜 레닌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과학기술 혁신을 중시하는 경영자로 성장했다. 그의 지휘 아래 추진된 콜라 초심층 시추는 12,620미터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랐고, 소련은 400척 규모의 지질탐사선단을 보유하게 되었다. 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 광물자원 정책의 이론가로 활동하며, 지질학을 국가안보의 기초로 재정립하려는 작업을 마지막까지 이어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지질탐사 기술과 관리의 과학화

코즐롭스키는 1953년 모스크바 지질탐사연구소를 졸업한 뒤 극동에서 시추조수로 일했고, 지질탐사대와 더 큰 지질학자 집단을 이끌었다. 1965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지질부 기술관리국장으로 옮긴 뒤 과학 연구, 새 장비와 기술 도입, 현장 작업 조직을 아우르는 기술 진보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1975년 소련 지질부 장관에 임명된 후에는 서시베리아의 석유, 아르한겔스크 인근의 다이아몬드, 극동의 주석을 포함한 자원 탐사 확대를 이끌었고, 콜라 초심층 시추와 우주·항공·지상·시추공을 연결하는 탐사 체계의 조직에도 관여했다. 1985년 저서에서는 시추 탐사에 사이버네틱스 체계를 적용했고, 1989년에는 지질경제 모델을 탐사와 작업 조직의 원리로 다뤘다. 국가광물매장량위원회 추도문은 그의 장관 재임 중 광물 원료 매장량이 열 배 늘었다고 평가한다. 2012년 공산당 기관지에 실린 인터뷰 소개문은 같은 기간 광물자원 잠재력이 두 배가 되었다고 기술한다. 서로 다른 수치는 각 글이 사용한 자원 지표의 정의가 확인되지 않으므로 구별해 볼 필요가 있다. 코즐롭스키는 40여 건의 발견과 발명, 600편이 넘는 논문 및 25권의 단행본을 남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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