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기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아카데미 사건의 유배에서 스탈린의 비호로 복귀한 역사가
1951년 가을, 반유대주의 캠페인이 한창이던 MГИМО 첫 강의에서 탈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프랑스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며, 내 성은 탈레다."
키예프 출신 유대인 역사가. ≪대륙봉쇄≫(1913)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아카데미 사건' 유배 후 ≪나폴레옹≫(1936)이 스탈린의 주목을 받아 복권, 스탈린상 3회 수상. 소련 서양사학의 제1인자.
경력 연표
- 1896키예프대학(성 블라디미르) 역사·문헌학부 졸업, 루치츠키 사사
- 1900–1903루나차르스키 강연 모임에서 체포, 헤르손으로 유배; 사강사로 페테르부르크대학 강의 시작
- 1909–1911≪프랑스혁명기 노동계급≫(2권)으로 박사학위 취득; 1913년 ≪대륙봉쇄≫ 출간
- 1913–1918유리예프(타르투)대학 교수; 런던 국제역사학회의(1913)에서 논문 발표
- 1918–1927페트로그라드 중앙기록부 지도부; 1921년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1927년 정회원
- 1929–1932'아카데미 사건'으로 체포; 1931년 8월 알마아타 유배, 1932년 말 레닌그라드 귀환
- 1936–1939≪나폴레옹≫(1936) 출간 — 스탈린의 주목으로 복권;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1937), ≪탈레랑≫(1939) 출간
- 1941–1945카잔대학 교수(1941–1943); ≪크림전쟁≫ 1·2권 출간(1941, 1943); 나치 전쟁범죄 조사 국가특별위원
- 1942–1955스탈린상 1급 3회(1942, 1943, 1946); 소르본·오슬로·프라하·브르노·알제 명예박사; 영국학사원 통신회원(1944); 1955년 1월 사망, 노보데비치 안장
관련 역사 사건
역사서술 방법과 문학적 스타일
탈레의 역사서술은 엄밀한 실증보다 생생한 서사와 인물 묘사에 무게를 둔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나폴레옹≫(1936)은 대표작으로, 방대한 사료 조사 위에 소설가적 필치로 한 인물의 전 생애를 그려내 스탈린의 주목을 받으며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그의 문체는 사실 관계에서 일정한 자유를 감수하면서도 독자를 사로잡는 극적 긴장을 창출했고, 이 때문에 동시대 마르크스주의 사학자들로부터 '역사적 작가'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탈레에게 역사란 계급투쟁의 도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였으며, 바로 이 점이 오늘날까지 그의 저작이 읽히는 이유다. 주요 저작으로 ≪대륙봉쇄≫(1913),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1937), ≪탈레랑≫(1939), 2권의 ≪크림전쟁≫(1941–1943)이 있으며, 파리·오슬로·프라하·브르노·알제 대학의 명예박사와 영국학사원 통신회원으로서 소련 사학의 국제적 권위를 대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