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흐라나의 월급을 받으며 혁명 테러를 지휘한 이중간첩
1902년 6월 아제프는 오흐라나에 500루블을 테러 활동에 기부했다고 보고하며 '당 내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했다'고 적었다. 경찰과 혁명 양쪽에 동시에 장부를 올린 셈이었다.
사회주의혁명당(SR) 전투조직의 수장으로 플레베 내무장관(1904)과 세르게이 대공(1905) 암살을 지휘하며 혁명 테러의 정점을 찍었지만, 동시에 1893년부터 오흐라나의 유급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동료들을 체포·처형으로 몰아넣은 이중간첩이었다. 게르슈니의 후계자이자 보리스 사빈코프의 상관으로서 전투조직을 중앙집권적 정예 부대로 재편했고, 암살 성공으로 쌓은 신임을 배신의 밑천으로 삼았다. 1908년 부르체프에게 정체가 폭로되어 SR당 전체가 궤멸적 타격을 입었으며, 독일로 도주한 아제프는 혁명운동과 비밀경찰 사이 가장 어두운 접점으로 남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04–1908 사회운동·조직 · 사회혁명당
경력 연표
- 1893–1899독일에서 전기공학 수학, 오흐라나 정보원 활동 시작
- 1899러시아로 귀국, 사회주의혁명당 운동에 합류
- 1901–1902통합 SR당 창립 참여, 게르슈니의 부관으로 전투조직 합류
- 1903–1908SR 전투조직 수장
- 1904플레베 내무장관 암살 조직
- 1905세르게이 대공 암살 조직
- 1906가폰 신부 암살 지시
- 1908부르체프에게 정체 폭로, 독일로 도주
- 1909–1918베를린에서 알렉산더 노이마이어 가명으로 은거
관련 역사 사건
아제프 사건과 폭로, 1906~1909년
1906년 말 혁명가이자 언론인인 블라디미르 부르체프는 전 오흐라나 간부 미하일 바카이에게서 사회주의혁명당 지도부에 경찰 정보원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부르체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아제프를 의심했으나 당내 주요 인사들을 설득할 증거가 부족했다. 전 경찰국장 알렉세이 로푸힌을 만나 아제프가 정보원임을 확인한 뒤, 부르체프는 증거를 정리해 당 중앙위원회에 제출했다. 당은 베라 피그너, 게르만 로파틴, 표트르 크로폿킨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파리에서 한 달 동안 심문한 뒤 의혹을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아제프는 로푸힌에게 자신의 폭로를 부인하도록 압박했지만, 로푸힌은 안드레이 아르구노프를 통해 증언을 확인하고 당 대표들에게도 알렸다. 1909년 1월 중앙위원회는 아제프를 처단하려 했으나 그는 프랑스로 유인된 별장에 나타나지 않고 독일로 달아났다. 사건은 아제프 개인의 정체 폭로에 그치지 않았다. 로푸힌은 아제프의 정체를 확인해 준 혐의로 체포되었고, 제정 당국은 그를 시베리아로 유형 보냈다. 혁명당은 지도부에 깊숙이 침투한 정보원에 대응하는 동시에, 경찰의 탄압과 내부 불신이라는 결과를 감당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