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파블로비치 막시모프

Юрий Павлович Максим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24–2002 ○ 자연사

아프간 전쟁과 소련 해체 속에서 전략로켓군을 지휘한 군대대장

1943년 7월 17일, 첫 전투에서 기관총 소대를 이끌고 적진에 뛰어들어 백병전 끝에 고지를 탈취한 뒤 7차례의 역습을 막아냈다. 중상을 입고 의식을 잃자 가족에게는 전사 통지서가 발송되었다.

위대한 조국전쟁에서 기관총 중대를 지휘하며 세 차례 부상을 입고도 카르파티아에서 체코슬로바키아까지 종전을 함께한 보병 장교로, 전후 두 개의 참모 아카데미를 금메달로 졸업하고 투르키스탄 군관구 사령관으로서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제40군의 작전을 관할했다.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전략로켓군 총사령관 겸 국방차관으로 재임하며 소련 핵전력 최전성기인 1,400기 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체제를 지휘했고, 소련 붕괴 후에도 전략억지군 사령관으로서 CIS 통합 지휘 체계의 이행을 맡았다. 말년까지 한 번도 당과 군을 떠나지 않고 국가 붕괴의 소용돌이 속에서 핵무기에 대한 민간 통제라는 헌법적 원칙을 지킨 군인이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략로켓군 현대화와 소련 해체기의 지휘

1985년 7월 전략로켓군 총사령관 겸 국방차관에 취임한 막시모프는 이동식 발사체 전력의 확대와 운용 교리 정비를 추진했다. 그의 재임 중 RS-20V, RS-22, RS-12M 토폴 등 신형 전략미사일 체계가 전력에 편입됐고, 철도 이동식 및 차량 이동식 체계의 전투임무 절차와 자동화 지휘통제 체계도 정비됐다. 그는 신형 체계로 재무장하거나 개편 대상이 된 사단의 전투준비태세와 장교 배치를 관리했다. 이러한 사업은 미국과 소련의 중거리핵전력조약 이행과도 맞물렸으며, 관련 군사기록은 그가 전략로켓군의 전투태세 유지와 조약 조치 수행을 담당했다고 평가한다.

1991년 11월 막시모프는 소련 전략억지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됐고, 1992년 3월에는 독립국가연합 전략억지군 사령관이 됐다. 국가 해체기에 전략 핵전력의 지휘 구조가 소련에서 독립국가연합 체제로 바뀌는 동안 그 지휘직을 연이어 맡았다. 1992년 10월 러시아 국방부 장관 관할로 들어갔으며 1993년 3월 퇴역했다. 이 경력은 기존 전략로켓군의 재무장과 전투태세를 유지하려는 업무와 새 국가 간 지휘 구조로의 이행을 한 시기에 겪은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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