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서명한 헬싱키 인권 약속을 내부에서 감시한 물리학자
1978년 5월 폐쇄 재판의 최후 진술에서 그는 말했다: "이런 재판으로는 헬싱키 그룹의 문서가 증언하는 사회의 병폐와 결함을 없앨 수 없습니다."
입자가속기 물리학자에서 소련 최초의 인권감시 조직을 세운 반체제 운동가로 선 인물. 1956년 당 회의에서 스탈린과 베리야를 '권력을 쥔 살인자'라 칭해 제명·해고당했고, 그로부터 20년 뒤인 1976년 5월 헬싱키 최종의정서의 인권 조항 이행을 감시하는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을 창립했다. 이는 소련 스스로 서명한 제3바스켓의 약속을 내부에서 뒤집어 맞대결시키는 일이었다. 1977년 2월 체포되어 7년 수용소와 5년 유형을 선고받고, 1986년 국적을 박탈당한 채 미국으로 추방되어 코넬대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52–56보안 원자력 연구소(훗날 이테프) 물리학자
- 1956스탈린·베리야를 격렬히 비판, 당 제명과 해고
- 1956–72예레반 물리연구소, 1963년 이학박사
- 1968아르메니아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 1973소련 최초 국제앰네스티 그룹 창립 참여
- 1976.5모스크바 헬싱키 그룹 창립, 초대 의장
- 1977–86체포, 7년 수용소와 5년 유형 선고
- 1986국적 박탈·미국 추방, 코넬대 교수
관련 역사 사건
헬싱키 감시를 국제 운동으로
1976년 5월 12일 오를로프는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모스크바 아파트에서 인권운동가들과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을 창립하고 초대 의장을 맡았다. 1975년 헬싱키 최종의정서에 서명한 소련 정부가 인권 조항을 이행하는지 조사하고, 위반 사례를 기록해 서명국들에 알리는 것이 그룹의 임무였다. 11명의 지식인으로 시작한 이 모임은 소련 당국이 서명한 약속을 국내의 감시와 국제적 문제 제기의 근거로 삼았다. 그룹은 창립 직후 국가보안위원회의 감시와 괴롭힘을 받았다.
그룹은 다른 나라에도 감시 조직을 만들자고 호소했고, 1976년 6월 미국 하원의원 밀리센트 펜윅은 이 호소에 응해 미국 헬싱키위원회 창설을 이끌었다. 리투아니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의 헬싱키 그룹과 체코슬로바키아의 헌장 77 등 동구권의 유사 조직들이 뒤이어 결성됐다. 모스크바 그룹이 연 기자회견은 정신의학의 정치적 악용을 조사하는 노동위원회 등 소련 내 다른 항의 단체들이 결성을 알리는 장이 되었다. 1977년 2월 오를로프와 동료들에 대한 체포가 시작됐고, 오를로프는 7년 노동수용소와 5년 유형을 선고받았다. 체포에 대응해 미국 헬싱키 감시위원회가 1978년 결성돼 수감된 감시자들을 지원하고, 자유 사회에서 헬싱키 감시단체가 어떻게 활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