쩡시성

曾希圣
중국공산당 마오주의 중국 중국 1904–1968 ○ 자연사

홍군의 정보 책임자에서 안후이의 대약진 지도자로, 기근을 감추다 「책임전」으로 돌아선 사람

후난 싱닝 출신으로 황푸군관학교 4기에 들어가 국민당에 입당했고, 소련 유학 뒤 1927년 공산당에 들어갔다. 1933년부터 중앙혁명군사위원회 제2국장으로 중앙 홍군에 정확한 정보를 대어 이름을 얻었다. 항일전쟁기 신4군 제7사단 정치위원으로 완장 근거지를 이끌었고, 건국 뒤 안후이성 당위원회 제1서기 겸 성 주석이 되었다. 대약진기 대규모 수리 공사를 밀어붙이고, 마오의 1959년 4월 「당내 통신」을 아래로 전하지 않았으며, 반대한 부성장 장카이판을 「반당 집단」으로 몰았다. 관방 인구지는 안후이의 사망자를 407만 명으로 인정한다. 1961년 「책임전」을 성 전체에 퍼뜨렸으나 1962년 7천인 대회에서 비판받아 물러났다. 1968년 숨졌다.

다른 이름: 증희성 · 쩡몐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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