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é Ramón Fernández Álvarez
피그스만(플라야 히론) 상륙 침공을 격퇴한 쿠바 혁명군 지휘관
1961년 4월 17일 피그스만 침공 때 피델 카스트로 의 지시로 2506여단과 맞서 싸운 민병대·정규군 부대를 지휘했다. 4월 19일 늦게 플라야 히론으로 돌파하여 침공군을 항복시킨 부대에 속했다.
쿠바의 공산주의자·군사 지도자이며 각료회의 부의장이었다. 1923년 산티아고데쿠바에서 태어나 1959년 혁명 이후 쿠바 혁명군(FAR)에 복무했고, 각료·부의장·대의원 등 여러 국가 직책을 맡았다. 쿠바 혁명의 가장 오래 산 역사적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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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반구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고 47년간 제국주의에 맞선 지도자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다.” — 몬카다 재판 변론(1953)
서반구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쿠바 혁명가. 몬카다 병영 습격으로 바티스타 독재에 맞서 투쟁을 시작했고, 1959년 게릴라전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 47년간 미국의 봉쇄와 압력 속에서도 사회주의 쿠바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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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몬카다 병영 공격 —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다"
1954 법정 최후진술을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다》로 비밀 출간
1956–1959 그란마 호 상륙, 시에라마에스트라 게릴라전
1959 바티스타 정권 전복 — 혁명정부 수립
1961–1962 피그스만 격퇴, 미사일 위기
1976–2008 국가평의회 의장
2008–2016 라울에게 이양, 2016년 사망
청진기를 소총으로 바꾼 국제주의 혁명의 아이콘
“둘, 셋, 더 많은 베트남을 만들어라.” — 삼대륙회의에 보낸 메시지(1967)
아르헨티나 출신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쿠바 혁명의 게릴라 사령관으로서 1959년 바티스타 정권 전복에 핵심 역할을 했다. 이후 국제 혁명 투쟁에 투신,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을 이끌다 1967년 체포·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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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1953 의대생 — 라틴아메리카 종단 여행
1955 멕시코에서 카스트로와 만남, 7·26 운동 합류
1956–1959 쿠바 게릴라전 사령관 — 산타클라라 함락
1959–1965 국립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
1960 《게릴라전》 출간
1965–1967 콩고·볼리비아 게릴라전
1965 논문 《쿠바에서의 사회주의와 인간》 발표
1967.10 볼리비아에서 생포, 이튿날 총살
몬카다에서 대통령까지, 반세기 동안 쿠바 혁명의 2인자로 군림한 조직자
“피델 은 대체 불가능하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그를 대체하지 않는 한.” — 대학생 연설, 2006년
7·26 운동 창립 멤버로 몬카다 병영 습격(1953)과 그란마 상륙에 참가했으며, 프랑크 파이스 동부전선 사령관으로서 오리엔테에 게릴라 해방구를 건설한 쿠바 혁명의 핵심 지휘관. 1959년부터 2008년까지 혁명무력부 장관을 지내며 현대 국가 사상 최장기 국방장관을 기록했고, 쿠바의 군사·보안 기구를 구축하고 공산당 제도화를 주도했다. 2008년 형 피델의 뒤를 이어 국가평의회 의장과 2011년 당 제1서기에 취임, 신중한 시장 개혁을 추진하며 2018년과 2021년 차례로 퇴진하기까지 반세기 넘게 쿠바 혁명의 없어서는 안 될 2인자로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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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몬카다 병영 습격 참가 — 13년형, 22개월 복역
1956 그란마 호 상륙 — 시에라마에스트라 게릴라전
1958 사령관 승진, 프랑크 파이스 동부전선 개척
1959–2008 혁명무력부(MINFAR) 장관 — 사상 최장기 국방장관
2006–2008 피델 투병 중 권한대행
2008–2018 국가평의회 의장 겸 각료회의 의장
2011–2021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2021 당 제1서기 퇴임 — 정치 은퇴